
PDF로 받은 계약서나 신청서에 서명 한 줄이나 페이지 몇 장만 고치면 되는 상황이신가요? '이걸 편집하려면 결국 돈 내고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나' 싶으실 겁니다. 결제 화면을 보고 나서야 사실은 공짜로 되는 편집이었다는 걸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PDF 몇 장 손보려다 유료 결제 화면 앞에서 멈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PDF 편집에서 어디까지가 공짜고 어디부터 돈이 드는지, 작업 종류별로 선을 그어 정리해 봤습니다.
PDF 파일은 이미 인쇄를 마친 전단지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전단지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일과, 전단지를 가위로 잘라 순서를 바꾸는 일과, 전단지에 이미 찍힌 글자를 지우고 다른 글자를 새로 찍는 일은 난이도가 다릅니다. 필요한 도구도 다릅니다.
PDF 편집은 한 가지 작업이 아닙니다. 최소 네 가지 다른 작업입니다. 서명·메모를 얹는 일, 페이지를 자르고 합치는 일, 글자와 이미지를 고쳐 쓰는 일, 암호를 걸거나 푸는 일입니다. 이 넷을 하나로 뭉쳐서 "PDF 편집 프로그램"을 찾으니까, 서명 하나만 넣으면 되는데도 유료 프로그램부터 검색하게 됩니다. 검색창에 작업 이름 대신 "PDF 편집"이라는 큰 말만 넣으니, 결과에도 가장 비싸고 큰 프로그램이 먼저 뜹니다.
작업 | 거의 항상 공짜인가 | 주로 어디서 | 주의할 점 |
|---|---|---|---|
서명·메모·하이라이트 | 그렇습니다 | 브라우저, 미리보기 앱 | 도장처럼 얹는 것뿐, 원본 글자는 안 건드림 |
페이지 삭제·순서 변경·합치기 | 대체로 그렇습니다 | 운영체제 기본 기능 | 파일을 어디에 올리는지가 더 중요 |
글자·이미지 고쳐 쓰기 | 아닙니다 | 유료 프로그램 | 무료 웹 도구는 레이아웃이 깨지기 쉬움 |
암호 걸기·풀기 | 내 파일일 때만 | 운영체제·전용 도구 | 남의 파일 암호를 푸는 건 도구 문제가 아님 |
표에서 '거의 항상 공짜'로 표시된 두 줄은 대부분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뒤의 두 줄은 파일의 성격과 용도에 따라 갈립니다.
작업을 나눴다면, 이제 왜 어떤 건 공짜고 어떤 건 아닌지 하나씩 봐야 합니다.
포스트잇을 붙이는 일부터 보겠습니다. 포스트잇은 전단지 위에 얹히기만 할 뿐, 원본 글자를 지우거나 다시 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어느 회사 도구든 대체로 문을 열어 줍니다.
어도비 아크로뱃 온라인에는 무료 계정과 유료 계정을 나눈 표가 있습니다. 그 표를 직접 봅니다. 읽기·하이라이트·댓글, 공유, 양식 채우기와 서명, 보내기까지는 신용카드 등록 없는 무료 계정에도 들어 있습니다. 텍스트·이미지 편집, 파일 변환, 합치기·페이지 정리, 압축·암호 추가는 그 아래 유료 칸으로 넘어갑니다.
맥을 쓰신다면 프로그램을 새로 깔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 앱인 미리보기를 엽니다. 사용법은 애플 공식 안내에 나와 있습니다. 서명을 만들어 등록해 두면 트랙패드나 카메라로 찍어 바로 넣을 수 있습니다. 양식 칸에 글자를 채우는 것도 기본 기능입니다.
윈도우라면 기본 브라우저인 엣지로 PDF를 엽니다. 관련 지원 문서가 따로 있습니다. 형광펜, 그리기, 메모, 양식 채우기 도구가 이미 들어 있습니다. 별도 설치가 필요 없습니다.
스마트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폰은 파일 앱에서 PDF를 열고 마크업 도구로 서명과 메모를 바로 넣을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구글 드라이브나 기본 메모 앱에서 비슷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두 경우 모두 별도 결제나 설치가 필요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새로 알아볼 게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음 작업부터입니다.
전단지를 가위로 잘라 필요한 부분만 남기거나, 여러 장을 겹쳐 순서를 바꾸는 데는 특별한 설비가 필요 없습니다. 손과 가위만 있으면 됩니다. PDF의 페이지 삭제·순서 변경·합치기도 비슷합니다.
윈도우에서는 "Microsoft Print to PDF"라는 기본 프린터가 이미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서를 열고 인쇄 화면에서 남길 페이지 번호만 지정한 뒤, 프린터를 이 항목으로 바꾸면 그 페이지만 담긴 새 PDF가 만들어집니다. 원본은 그대로 남고 프로그램도 새로 깔 필요가 없습니다.
맥에서는 미리보기 앱에서 여러 PDF의 페이지를 서로 드래그해서 옮기면 그대로 합쳐집니다. 페이지를 지우고 싶으면 해당 페이지를 선택하고 삭제하면 됩니다.
계약서 다섯 장 중 서명 페이지 한 장만 다시 인쇄해서 보내야 하는 경우도 같은 방법으로 끝납니다. 굳이 전체 문서를 편집 프로그램에 다시 불러올 필요가 없습니다.
나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페이지 세 장만 지우면 되는데도 "PDF 편집 프로그램 다운로드"부터 검색해서 낯선 사이트의 설치 파일을 받는 경우입니다. 좋은 예는 그 반대입니다. 인쇄나 미리보기 같은 기본 기능으로 내 컴퓨터 안에서 바로 끝내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새 프로그램을 찾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있는 기능을 찾는 문제입니다.
가위질까지는 공짜인데, 그럼 어디서부터 유료로 넘어가는지가 궁금하실 겁니다.
전단지에 이미 찍힌 문장을 지우고 그 자리에 다른 문장을 넣으려면, 줄 간격과 글자 크기를 맞춰 인쇄판을 통째로 다시 짜야 합니다.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가위로 자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작업입니다.
PDF에서 이 작업이 바로 텍스트·이미지 편집입니다. 앞서 본 어도비 표에서도 이 항목부터 유료 칸에 있습니다. 다른 무료 웹 도구로 텍스트를 고칠 수는 있지만, 원래 폰트가 없거나 줄 간격 계산이 다르면 그 부분만 레이아웃이 어긋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무료 도구가 이 작업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결과물이 원본만큼 깔끔하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헷갈리는 경우가 하나 있습니다. 계약서 빈칸에 이름이나 날짜를 새로 써넣는 일은 텍스트 편집이 아닙니다. 포스트잇처럼 위에 글자를 얹는 서명·양식 채우기에 가깝습니다. 반면 이미 인쇄된 조항의 문장을 고치는 일은 인쇄판을 다시 짜는 쪽입니다. 빈칸을 채우는 것과 문장을 고치는 것을 같은 작업으로 보면, 필요 없는 유료 프로그램부터 찾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꼭 짚어야 할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어도비 페이지에는 "7일 이내 언제든 취소 가능"이라는 문구가 붙은 유료 체험판 안내가 함께 있습니다. 이건 계정 자체가 공짜라는 뜻이 아닙니다. 7일이 지나면 등록해 둔 결제 수단으로 자동 결제됩니다. 문서 하나 편집하려고 체험판에 카드를 등록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정말 텍스트를 새로 짜야 하는 작업인지부터 확인하세요.
텍스트 편집까지 정리했다면, 이제 암호가 걸린 파일을 보겠습니다.
집 열쇠를 잃어버려 열쇠공을 부르는 것과, 남의 집 자물쇠를 따는 것은 도구는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암호가 걸린 PDF도 똑같습니다.
내가 만들었거나 정당하게 받은 파일에 걸린 암호를 잊어버린 경우라면, 운영체제 기본 기능이나 무료 도구로 여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파일이 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면,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여는 순간 다른 문제가 됩니다. 이건 프로그램의 성능 문제가 아닙니다. 파일에 대한 권한 문제입니다.
이런 파일은 회사 규정이나 개인정보 관련 책임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호를 풀 수 있느냐와 풀어도 되느냐는 완전히 다른 질문입니다.
이 작업은 도구부터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그 파일이 정말 내가 열어도 되는 파일인지부터 확인하시면 됩니다.
암호까지 짚었으니, 이제 방법 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 하나를 봐야 합니다.
전단지를 수선하려고 아무 인쇄소에나 맡기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인쇄소는 일을 끝내면 원본을 그대로 돌려주지만, 어떤 인쇄소는 원본을 복사해서 서버에 남겨 둡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온라인 PDF 변환·편집 사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일을 올리는 순간 그 파일은 내 컴퓨터를 떠나 낯선 서버에 저장됩니다. 계약서, 신청서,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가 적힌 서류라면 이 과정 자체가 위험 요소입니다. 처리 후 파일을 바로 지운다고 안내하는 사이트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지 이용자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굳이 온라인 도구를 써야 한다면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주소가 https로 시작하는지, 개인정보처리방침에 업로드한 파일의 보관 기간이 적혀 있는지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는 사이트라면 서류 종류와 상관없이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나쁜 예는 계약서 전체를 아무 변환 사이트에 올려 텍스트를 고치는 것입니다. 좋은 예는 업로드가 필요 없는 방법부터 찾아보는 것입니다. 앞서 본 서명, 페이지 삭제, 합치기는 대부분 업로드 없이 내 컴퓨터 안에서 끝낼 수 있는 작업입니다. 온라인 사이트가 무조건 위험한 건 아닙니다. 다만 서류 종류에 따라 써도 되는 사이트와 피해야 할 사이트가 갈립니다.
그러면 업로드 없이 끝내는 방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크롬을 쓰신다면 문서를 열고 인쇄(Ctrl+P)를 누른 뒤, 대상을 "PDF로 저장"으로 바꾸고 페이지 범위에서 남길 페이지만 지정하면 그 부분만 담긴 새 파일이 만들어집니다. 파일이 브라우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윈도우 엣지에서는 PDF를 연 상태에서 형광펜과 메모, 서명란 채우기까지 설치 없이 됩니다. 맥에서는 미리보기 앱 하나로 서명, 페이지 합치기·삭제, 양식 채우기가 대부분 해결됩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새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컴퓨터에 이미 있던 기능입니다.
정말 텍스트를 다시 짜야 하거나 암호를 새로 걸어야 하는 작업만 남았을 때, 그때 가서 유료 프로그램이나 신뢰할 만한 전용 도구를 알아보셔도 늦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스캔한 종이 문서의 글자를 인식해 텍스트로 바꾸는 OCR 같은 고급 기능입니다. 이런 작업은 대부분 여전히 유료 영역에 남아 있습니다.
PDF 편집 무료는 프로그램 하나를 잘 골라야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할 일이 포스트잇 붙이기인지, 가위질인지, 인쇄판을 다시 짜는 일인지부터 나누면 대부분은 이미 가진 기능으로 끝납니다. 네 가지 중 하나만 필요한데도 모든 기능이 담긴 유료 프로그램을 통째로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흔한 낭비입니다.
오늘은 지금 처리해야 할 PDF 한 개를 놓고, 위 표에서 그 작업이 어느 줄에 해당하는지 하나만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