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식 키보드 청소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스위치 틈에 낀 먼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계신 상황이시죠. "키캡만 빼면 되는 거 같은데, 잘못 건드리면 고장 나는 거 아닐까" 싶어서 손을 못 대고 계실 겁니다. 저도 키보드를 뒤집었다가 지우개 가루와 머리카락이 쏟아지는 걸 보고서야 마음먹고 직접 분해해 청소해 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페이스바를 빼다가 한참 막혔고, 물로 씻어도 되는 부분과 안 되는 부분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키캡을 뺀 순서와 막혔던 대목, 정전용량 방식과 기계식 방식이 물청소에서 갈리는 지점, 보증기간 안에서 조심해야 할 것까지 겪은 순서 그대로 풀어보겠습니다.
기계식 키보드는 키캡과 상판 사이에 틈이 있고, 스위치 안에서 마찰이 일어나며 정전기가 생겨 먼지를 끌어당기는 구조라 다른 입력장치보다 먼지가 잘 쌓입니다.
기계식 키보드 청소는 도구를 먼저 챙기는 편이 시간을 아낍니다. 없는 도구를 중간에 찾으러 다니면 이미 뺀 키캡이 뒤섞이기 쉽습니다. 무선 키보드라면 시작 전에 배터리나 무선 리시버부터 분리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실제로 쓴 도구는 다섯 가지였습니다.
와이어형 키캡 리무버: 스테빌라이저가 걸린 키까지 뺄 수 있는 형태
압축공기 캔: 스위치 사이 먼지를 밖으로 튕겨내는 용도
극세사 브러시: 보강판과 케이스 틈을 쓸어내는 용도
이소프로필알코올과 면봉: 겉면과 스위치 사이 얼룩 제거용
중성세제와 미온수를 담을 그릇: 키캡을 담가 씻는 용도
도구를 새로 산다면 키캡 리무버, 압축공기, 브러시, 알코올까지 합쳐 만 원 안팎이면 충분합니다. 이미 갖고 있는 청소용품이 있다면 그것부터 써보고 부족한 것만 채워도 됩니다.
키캡을 빼기 전에는 스마트폰으로 키보드 전체를 한 장 찍어두었습니다. 배열이 특이한 키보드일수록 나중에 어느 자리에 어떤 키캡이 있었는지 헷갈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도구를 다 챙겼다면, 이제 키캡부터 뺄 차례입니다.
키캡을 빼는 순서부터 정리하면, 답은 간단합니다. 와이어형 키캡 리무버를 키캡 양쪽 틈에 걸고 수직으로 곧게 당기면 대부분 키캡이 빠집니다.
막힌 대목은 스페이스바였습니다. 알파벳 키는 순서대로 잘 빠졌지만, 스페이스바를 당기자 키캡만 빠지고 철사 모양 부품이 기판에 걸린 채로 남았습니다.
이 부품이 스테빌라이저입니다. 스페이스바나 엔터, 시프트처럼 긴 키가 눌렸을 때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잡아주는 보조 장치이고, 양쪽 와이어가 기판에 따로 걸려 있습니다. 검색해보고 나서야 이 철사 부품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스테빌라이저에는 기판에 고정하는 방식과 보강판에 고정하는 방식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 키보드는 보강판 고정 방식이라, 와이어를 살짝 위로 들어 올리듯 빼야 했습니다.
스테빌라이저가 달린 키는 알파벳 키와 같은 방법이 아닙니다. 위로 곧게 당기지 말고 좌우로 살짝 흔들면서 와이어 걸림을 한쪽씩 풀어야 하며, 힘으로 당기면 와이어가 휘거나 부러질 수 있습니다.
키캡을 다 뺐다면, 이제 그 밑에 쌓인 먼지를 정리할 차례입니다.
먼지는 압축공기와 브러시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압축공기 캔을 짧게 여러 번 나눠 뿌려서 스위치 사이 먼지를 튕겨내고, 극세사 브러시로 보강판 위를 쓸어내면 대부분 빠집니다.
압축공기를 한 번에 길게 누르면 캔 안의 냉각액이 같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2~3초씩 끊어서 분사하고, 캔을 세워 든 채로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먼지를 한 번에 다 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압축공기와 브러시질을 며칠 간격으로 나눠서 반복하면 구석에 남은 부스러기까지 웬만큼 빠져나옵니다. 먼지 제거는 한 번에 끝내는 작업이 아닙니다. 며칠에 걸쳐 나눠 하는 쪽이 스위치에도 덜 부담됩니다.
청소기로 직접 빨아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흡입력이 센 청소기는 스위치 안의 작은 부품까지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약한 흡입력으로 짧게 쓰는 편이 낫습니다.
기판을 만지기 전에는 금속 물체를 한 번 만져 정전기를 미리 빼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전기가 기판 부품에 그대로 흐르면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먼지를 걷어냈다면, 다음은 물을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입니다.
키캡은 물로 씻어도 됩니다. 미온수에 중성세제를 풀어 키캡을 담가 두었다가 부드러운 솔로 문지르고, 그늘에서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완전히 말리면 됩니다.
키캡 재질에 따라서도 씻는 방법이 갈립니다. PBT 재질은 오래 담가도 변형이 적지만, ABS 재질은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면 살짝 휘어질 수 있어 미온수를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키보드 본체는 다릅니다. 방수 기능이 따로 있는 제품이 아니라면, 본체에 물을 직접 뿌리거나 담그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본체 안에는 기판과 스위치 접점이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물이 접점 사이에 남으면 부식되거나, 미처 마르지 않은 물기가 기판으로 흘러들어 합선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물청소는 모든 기계식 키보드에 똑같이 적용되는 방법이 아닙니다. 방수 코팅이 된 일부 제품만 예외이고, 나머지는 본체와 스위치 겉면을 이소프로필알코올을 적신 면봉이나 극세사 천으로 닦아내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소프로필알코올은 농도도 살펴보고 골랐습니다. 91~99% 농도는 수분이 적어 빨리 마르고 얼룩이 덜 남지만, 70% 농도는 물이 더 섞여 있어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자국이 남기 쉽습니다.
키캡을 말릴 때는 직사광선을 피했습니다.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색이 바래거나 각인이 흐려질 수 있어, 그늘진 곳에 수건을 깔고 널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물청소 여부는 키보드 방식에 따라서도 갈립니다.
키캡 겉면을 알코올로 닦기 전에는 각인 방식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각인 방식에 따라 알코올에 약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실크스크린 인쇄는 글자를 표면에 얇게 찍어 넣는 방식이라, 알코올을 자주 문지르면 글자가 흐려지거나 지워질 수 있습니다. 반면 이중사출이나 염료승화 인쇄는 글자가 플라스틱 안쪽까지 스며 있거나 색이 다른 플라스틱을 결합한 구조라 알코올을 묻혀도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모든 키캡이 알코올에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가형 키보드일수록 실크스크린 방식을 쓰는 경우가 많아, 알코올 티슈로 겉면만 살짝 닦고 세게 문지르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다 마른 키캡은 처음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원래 자리에 맞춰 끼웠습니다. 사진이 없었다면 스테빌라이저가 걸린 키 몇 개는 자리를 헷갈렸을 것 같습니다.
재조립한 다음에는 모든 키를 한 번씩 눌러 인식이 잘 되는지 확인했습니다. 스테빌라이저가 걸린 키 하나가 눌러도 반응이 없어서, 와이어를 다시 살펴보고 나서야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각인이 지워질 걱정까지 덜었다면, 이제 키보드 종류에 따른 차이를 볼 차례입니다.
기계식 스위치를 완전히 분해해 물로 씻는 방법도 커뮤니티에는 퍼져 있습니다. 인두로 기판과 스위치를 잇는 납땜을 녹여 스위치를 떼어내고, 스위치 하우징을 열어 스프링과 스템을 분리한 뒤 세제물에 담가 씻습니다. 씻은 부품은 그늘에서 완전히 말리고 윤활유를 다시 발라 재조립해야 원래 타건감이 돌아옵니다. 이 방법은 납땜 인두와 스위치 오프너 같은 별도 도구가 필요해서, 키캡만 빼는 정도의 청소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갑니다.
방식 | 스위치 낱개 분리 | 물청소 관행 | 이유 |
|---|---|---|---|
기계식(체리 MX류) | 됨. 스위치를 기판에서 떼어 스프링·스템·하우징만 따로 세척 | 스위치를 분해한 뒤에만, 완전 건조와 재윤활을 전제로 함 | 접점이 낱개로 떨어져 있어 세척과 재조립이 상대적으로 단순함 |
정전용량 무접점(리얼포스·해피해킹 계열) | 구조상 까다롭거나 안 됨. 러버돔·원뿔 스프링·정전용량 센서가 한 조합으로 맞물림 | 권장하지 않음. 마른 클리닝을 원칙으로 함 | 정렬이 조금만 틀어져도 특정 키가 안 눌리거나 오작동함 |
표에서 보듯 기계식은 스위치를 낱개로 분리할 수 있는 구조라서, 분해 후 물청소가 커뮤니티에서 관리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전용량 방식은 접점 대신 정전용량 변화로 입력을 읽기 때문에, 러버돔과 스프링 정렬이 조금만 어긋나도 고장으로 이어집니다.
정전용량 방식의 청소는 기계식과 같은 순서가 아닙니다. 분해 없이 겉면과 틈새만 다루는 것이 원칙이고, 물청소보다는 압축공기와 마른 브러시, 알코올 면봉으로 끝내는 편이 안전합니다. 오래 써서 러버돔이 뻑뻑해졌다면, 물청소보다는 소량의 마른 윤활제를 쓰는 정도로 관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방식과 별개로, 분해 전에 한 가지 더 확인할 게 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를 산 지 1년이 안 됐다면, 분해하기 전에 보증 규정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앱코는 자주하시는 질문 안내에서 무상 A/S 기간을 1년으로 두면서도, 임의로 분해하거나 개조한 제품은 무상 A/S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혀 두었습니다.
레오폴드는 A/S 유의사항에서 개인이나 제3자가 임의로 개조·분해한 제품은 A/S를 하지 않는다고 안내합니다. 분해 흔적이 있으면 별도 연락 없이 착불로 돌려보낸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여기서 갈리는 기준은 어디까지가 분해냐입니다. 키캡을 빼서 씻는 정도는 두 회사 모두 일반적인 사용 범위로 보지만, 스위치를 기판에서 떼어내 하나씩 뜯는 작업은 A/S 규정이 말하는 분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키캡을 빼는 것과 스위치를 뜯는 것은 같은 난이도의 작업이 아닙니다. 키캡은 손으로 되지만, 스위치 분해는 인두로 납땜을 뜯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해 여부가 애매하다면, 손대기 전에 제조사 고객센터에 사진과 함께 먼저 물어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보증기간이 지난 키보드라면 사설 수리 업체에 맡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스위치 개별 구매와 납땜 작업까지 포함되면 새 키보드 가격에 가까운 비용이 나올 수 있어, 맡기기 전에 견적부터 물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해외 직구로 산 키보드라면 국내에서 A/S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어, 분해 여부와 상관없이 사설 수리에 의존해야 할 수 있습니다.
보증기간 안에 스위치까지 분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키캡 분리와 압축공기, 마른 클리닝 선에서 마무리해도 먼지 대부분은 빠집니다. 보증기간 안에서 분해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A/S 자체가 막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청소 주기도 같이 정해두면 다음부터 덜 고민하게 됩니다. 코세어 공식 가이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벼운 청소를 권장하고, 먼지나 이물질이 눈에 띄게 쌓이면 그때그때 닦아내는 방법도 같이 안내합니다. 사무실처럼 먼지가 적은 환경이라면 두세 달에 한 번으로도 충분하고,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실내 흡연 환경이라면 한 달에 한 번씩 더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 낫습니다.
기계식 키보드 청소는 키캡을 빼는 순서와, 물을 어디까지 쓰느냐를 가르는 문제로 좁혀집니다. 스테빌라이저 걸림과 정전용량 방식의 물청소 금지, 보증기간의 분해 기준까지 챙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분해했을 때는 스페이스바 하나 때문에 십 분 넘게 헤맸지만, 걸림의 원리를 알고 나니 다음부터는 오 분이면 끝났습니다.
오늘 할 일은 키보드를 뒤집어 먼지 양부터 확인하는 것입니다.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진다면, 스테빌라이저 키 4개(스페이스바, 엔터, 좌우 시프트)부터 빼서 밑을 닦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