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대표팀을 보면 포지션마다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는 선수들이 있다. 해리 케인이 그렇고, 중원에서는 주드 벨링엄과 데클란 라이스가 있다.
그런데 한동안 애매했던 자리가 있었다. 왼쪽 윙어다.
마커스 래시포드, 필 포든, 에베레치 에제, 노니 마두에케 등이 차례로 기회를 받았지만 '여기는 이 선수 자리'라고 할 정도로 굳어진 느낌은 없었다.
최근에는 그 자리에 조금씩 이름이 하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앤서니 고든이다.
고든의 최근 대표팀 활약을 보면 단순히 몇 경기 잘한 정도로 보기에는 꽤 꾸준하다.
스페인전 득점
체코전 선제골
월드컵 토너먼트 이후 득점과 도움을 꾸준히 만들어내며 공격 비중 확대
특히 눈에 띄는 건 공격에서의 적극성이다.
상대 수비수에게 계속해서 달려들고, 박스 안으로 들어가며, 직접 슈팅까지 가져간다.
예전의 고든을 생각하면 크게 달라진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고든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스피드다.
빠르다. 그리고 많이 뛴다. 압박도 적극적이다.
뉴캐슬 시절부터 고든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런 평가에 익숙할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고든에 대한 평가가 여기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빠른 선수.' '열심히 뛰는 선수.' '압박을 잘하는 선수.'
물론 이것만으로도 좋은 윙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팀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뛰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최근 고든에게서 보이는 변화가 바로 그 부분이다.
예전 고든 | 지금 고든 |
|---|---|
스피드로 풀백 제치기 | 스피드 + 안쪽으로 파고들기 |
측면 돌파 위주 | 바깥으로 빠져 크로스 선택까지 |
많이 뛰고 압박하는 윙어 | 공을 쥐었을 때 선택지가 넓은 윙어 |
공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 고든을 단순히 '빠른 윙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변화가 소속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든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 새로운 환경에서 뛰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요구되는 축구는 단순히 빠르게 뛰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받아야 하고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위치를 바꿔야 하고
언제 안으로 들어갈지, 언제 측면에 남아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고든 본인도 잉글랜드에서는 자신의 스피드와 압박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기술이나 축구 지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스페인으로 건너온 뒤에는 오히려 그 부분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리가에서 이미 여러 차례 도움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적이 단순히 팀을 옮긴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유지하면서, 기존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만난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마커스 래시포드와 비교하게 된다.
두 선수 모두 잉글랜드의 왼쪽 공격을 맡을 수 있는 선수지만 플레이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마커스 래시포드 | 앤서니 고든 | |
|---|---|---|
강점 | 공간을 활용해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림 | 수비수와 계속 맞붙으며 경기 내내 측면을 흔듦 |
공을 잡은 뒤 | 빈 공간으로 치고 나감 | 수비수를 직접 상대, 안쪽·바깥쪽 둘 다 선택 |
상대 풀백 입장 | 뒷공간을 먼저 경계 | 어느 쪽을 막을지 계속 판단해야 함 |
고든은 공을 잡은 뒤 수비수를 직접 상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스타일은 잉글랜드가 상대적으로 많은 공격권을 가져가는 경기에서도 유용하다.
수비가 내려앉았을 때 개인 능력으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기에 득점과 찬스 창출까지 더해지고 있다.
고든의 최근 경기력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공격 관련 지표에서도 눈에 띈다.
월드컵 토너먼트 이후 잉글랜드 경기에서 아래 지표 모두 팀 내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기대득점(xG)
기대도움(xA)
페널티박스 안 터치
찬스 창출
유효슈팅
특히 고든의 장점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공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직접 슈팅을 할 수도 있고,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수비수를 끌어낸 뒤 공간을 만들 수도 있고, 직접 그 공간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대표팀에서 이런 선수가 한쪽 측면에 확실하게 자리 잡는 것은 꽤 중요하다.
해리 케인처럼 중앙에서 확실한 기준점이 있는 팀이라면 측면 공격수가 상대 수비를 벌려주는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든이 왼쪽에서 꾸준히 위협을 줄 수 있다면 잉글랜드 전체의 공격 선택지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토마스 투헬이 대표팀을 맡으면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결국 '누구를 믿고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대표팀은 클럽처럼 매주 경기를 치르지 않기 때문에 감독이 원하는 전술을 완성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각 포지션에서 역할이 명확한 선수들이 중요해진다.
고든은 최근 그 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투헬 역시 최근 고든의 경기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놓았다.
아직 잉글랜드 대표팀의 왼쪽 자리가 완전히 결정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여러 선수를 계속 돌려가며 시험해야 하는 상황과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고든이 계속 지금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잉글랜드는 당장 눈앞의 경기만 바라보고 있는 팀이 아니다.
투헬이 장기적으로 2028년 유로까지 바라보고 팀을 만들어간다면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떤 선수들이 핵심으로 자리 잡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고든의 최근 성장은 꽤 흥미롭다.
시기 | 고든의 이미지 |
|---|---|
과거 | 빠르고 활동량 많은 윙어 |
지금 | 위 장점에 득점·도움·찬스 창출, 다양한 드리블 선택, 좁은 공간에서의 플레이까지 추가 |
결국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가장 애매했던 자리 중 하나였던 왼쪽 윙어에 하나의 답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경기만 놓고 보면 고든은 더 이상 단순한 후보 선수로 보기 어렵다.
2026년 잉글랜드 대표팀 스쿼드를 이야기할 때 앤서니 고든의 이름을 빼놓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