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대표팀 라인업에서 지난 10년 동안 제일 고민할 필요 없었던 자리가 어디였냐고 하면 골키퍼 아닐까 싶다
조던 픽포드가 있었으니까
2017년에 대표팀 데뷔한 뒤 월드컵이고 유로고 거의 전부 픽포드가 나왔다
공격수는 누구를 써야 하는지, 중원 조합은 어떻게 가져갈지 말이 많아도 골키퍼만큼은 그냥 픽포드였다
그런데 이제 슬슬 이 공식이 깨질 조짐이 보인다
토마스 투헬이 제임스 트래포드를 스페인전 선발로 내보냈다
상대가 스페인이라는 게 재미있다
그냥 약체와의 평가전에서 어린 골키퍼에게 경험치를 먹인 게 아니라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직접 테스트한 것이다
경기는 잉글랜드가 2-3으로 졌고 트래포드는 세 골을 허용했다
그래도 이 경기를 보고 트래포드의 대표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기에는 좀 이르다
오히려 이번 경기에서 봐야 할 건 왜 투헬이 하필 지금 트래포드를 꺼냈느냐 쪽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픽포드가 못해서 이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픽포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에서 가장 검증된 골키퍼다
조던 픽포드 대표팀 기록 | |
|---|---|
대표팀 출전 | 91경기 |
클린시트 | 46회 |
2026 월드컵 | 피터 실턴을 넘어 잉글랜드 골키퍼 월드컵 최다 출전 |
메이저대회 승부차기 | 14번의 킥 중 4개 선방 |
이런 선수에게 갑자기 “이제 너 말고 트래포드 쓸게”라고 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나이가 걸린다
현재 픽포드는 32세다
2028 유로가 열리면 34세가 된다
물론 골키퍼는 필드 플레이어보다 선수 생명이 길다
34세라고 해서 당장 대표팀에서 내려올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잉글랜드가 지금부터 차기 골키퍼를 준비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지금이 딱 적당한 시점이다
그래서 이번에 투헬이 트래포드를 두고 한 선택이 의미가 있다
투헬은 이번 A매치 기간 동안 픽포드와 트래포드에게 각각 두 경기씩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결국 직접 보겠다는 거다
픽포드를 당장 밀어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트래포드가 앞으로 그 자리를 노릴 만한 수준인가를 확인하는 과정
이렇게 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트래포드를 차기 잉글랜드 골키퍼 후보로 볼 때 가장 먼저 눈여겨볼 부분은 나이다
23세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으로 뛴 경험이 있는 골키퍼가 23세라는 건 꽤 큰 메리트다
게다가 발밑도 괜찮다
요즘 골키퍼에게는 선방만 잘한다고 끝이 아니다
후방에서 공을 받아 압박을 풀어줘야 하고, 때로는 수비수처럼 빌드업의 한 축 역할도 해야 한다
트래포드는 이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페인전에서도 공을 가지고 있을 때 크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반에는 페란 토레스의 슈팅을 막아내기도 했다
세 골을 먹긴 했지만 적어도 “대표팀 데뷔전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얼어붙었다”는 경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트래포드의 또 다른 장점을 이미 실패를 한 번 겪어봤다는 점이라고 본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트래포드는 맨체스터 시티 유스 출신이다
시기 | 트래포드에게 있었던 일 |
|---|---|
2023년 | 번리 이적, 프리미어리그 본격 데뷔 |
번리 첫 시즌 | 28경기 67실점, 시즌 막판 주전 자리 내줌 |
2024-25시즌 | 번리 승격, 리그 16실점 |
맨시티 복귀 | 이적료 2,700만 파운드 |
복귀 4주 뒤 | 맨시티가 잔루이지 돈나룸마 영입, 다시 주전 경쟁 |
맨시티 시절 | FA컵 결승·카라바오컵 결승 선발 출전 |
올 시즌 | 리즈 이적, 최대 4,500만 파운드 규모 |
첫 시즌은 정말 쉽지 않았다
어린 골키퍼 입장에서는 상당히 뼈아픈 시즌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승격 시즌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그러자 맨시티가 다시 트래포드를 데려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제 맨시티 주전으로 가나?” 싶었는데 또 일이 꼬였다
세계적인 골키퍼가 들어오면서 트래포드는 다시 주전 경쟁을 해야 했다
그래도 빅클럽에서 큰 경기를 경험했고, 이번에는 리즈가 트래포드를 데려갔다
이 정도면 이제 단순한 유망주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한 번 흔들렸고, 다시 올라왔고, 또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 결국 다시 기회를 잡은 골키퍼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대표팀에서 꽤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올 시즌 트래포드가 리즈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좋은 출발을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리즈는 시즌 초반 프리미어리그 5위권까지 올라왔고 트래포드도 두 차례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여기서 투헬의 시선이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팀 골키퍼는 클럽에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뽑히는 자리가 아니다
꾸준하게 경기에 나가면서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트래포드는 지금 리즈에서 그 기회를 받고 있다
그리고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도 이미 우승 경험이 있다
2023년 U-21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했고 결승전 상대도 스페인이었다
그 경기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페널티킥을 막아내면서 팀의 우승을 지켜냈다
그러니까 스페인이라는 이름이 트래포드에게 꼭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이번에는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와 스페인을 상대했고, 결과는 패배였다
그래도 이제 막 대표팀 경쟁에 들어온 골키퍼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볼 게 더 많다
그렇다고 트래포드가 지금 당장 픽포드보다 낫다고 하면 그건 너무 나간 이야기다
현재까지는 픽포드가 앞선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준 실제 선방 능력과 경험은 트래포드가 아직 비교하기 어렵다
2024-25시즌 이후 픽포드는 기대실점보다 실제 실점을 줄이는 능력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있다
상대가 만들어낸 찬스의 질까지 고려했을 때 예상되는 실점보다 실제로 내준 골이 적다는 뜻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여전히 픽포드의 경쟁력이 상당하다
다만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올 시즌 비교 | 앞서는 쪽 |
|---|---|
선방률 | 트래포드 |
패스 정확도 | 트래포드 |
기대실점 대비 실점 억제 | 픽포드 |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금의 픽포드와 미래의 트래포드가 가진 강점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지금 당장 1번을 바꾸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둘을 계속 경쟁시키면서 트래포드가 어디까지 올라오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전에서 트래포드에게 세 골을 내준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골키퍼니까 실점에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첫 성인 대표팀 선발 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을 만났고 세 골을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평가를 끝내면 너무 단순하다
오히려 투헬이 보고 싶었던 건 이런 부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압박이 들어왔을 때 공을 얼마나 편하게 처리하는지
수비진과 호흡은 어떤지
어려운 슈팅이 왔을 때 얼마나 반응하는지
큰 경기에서 실수했을 때 다음 장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런 건 훈련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직접 경기에 넣어본 거다
그리고 투헬은 한 경기로 끝내지 않았다
두 경기를 주겠다고 했다
이게 오히려 이번 일의 핵심이다
현재만 보면 픽포드다
이건 굳이 논쟁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잉글랜드에서 보여준 기록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8년까지 생각하면 트래포드의 존재가 상당히 신경 쓰인다
나이 | 조던 픽포드 | 제임스 트래포드 |
|---|---|---|
지금 | 32세 | 23세 |
2028 유로 | 34세 | 25세 |
그 사이 트래포드가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골키퍼라는 포지션 특성상 2~3년 동안 선수의 위치가 크게 바뀌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픽포드가 앞서 있지만, 트래포드가 리즈에서 계속 주전으로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대표팀에서도 경쟁력을 증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상황이다
픽포드가 독점하던 자리에 이제 경쟁자가 생겼으니까
나는 이번 트래포드 선발을 이렇게 보는 게 가장 맞다고 생각한다
픽포드의 시대가 끝난 게 아니다
대신
픽포드 다음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후보로 트래포드가 들어온 거다
10년 가까이 대표팀 골문을 지킨 픽포드가 하루아침에 내려올 리는 없다
하지만 23세의 트래포드가 리즈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성장하고 있고, 이미 프리미어리그와 맨시티에서 큰 경기까지 경험했다
잉글랜드 U-21에서는 우승도 해봤다
이 정도면 투헬이 직접 확인해볼 이유는 충분하다
결국 앞으로 몇 달, 몇 년이 중요하다
픽포드가 계속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2028년에도 1번 장갑을 차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트래포드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올라온다면?
그때는 진짜 경쟁이 된다
잉글랜드 골키퍼는 10년 동안 픽포드의 자리였지만, 이제 처음으로 그 자리를 노리는 선수가 나타났다
아직은 픽포드가 앞선다
그런데 트래포드가 생각보다 빨리 따라오고 있다
이 경쟁, 꽤 재미있게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