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1년 봄, 마흔을 넘긴 화가 하나가 파리를 떠났다. 행선지는 남태평양의 타히티였다. 그곳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림이 팔릴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는 편지와 일기에서 스스로를 ‘야만인’이라 불렀다. 폴 고갱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가정도 생활도 흔들렸고, 그는 1903년 남태평양의 마르키즈 제도에서 생을 마쳤다. 서머싯 몸은 그를 모델 삼아 『달과 6펜스』를 썼다. 타히티에서 그린 가장 큰 그림의 제목은 이렇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도망친 사람이 붙인 제목치고는 질문이 지나치게 근본적이다. 아니, 도망쳤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고갱을 한 번쯤 부러워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난 9월 1일 저녁 6시, 그 부러움에 이름을 붙인 노래가 나왔다. 청하의 ‘México’다. I.O.I 10주년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솔로 복귀곡이고, 직전 싱글 ‘Save me’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싱글 한 장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은 타이틀, 영어 버전, 스페인어 버전이 함께 들어 있다. 안무는 라치카, 뮤직비디오는 NOVV가 맡았다. 국내 첫 무대는 9월 3일 엠카운트다운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멕시코 현지에서 무대를 보였다. 여기까지는 어느 기사에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후렴이다. 통째로 스페인어다.
스페인어로 ‘가자’는 Vamos다. 그런데 이 곡은 뒤에 nos를 붙인 Vámonos를 쓴다. 한 글자 차이다. 하지만 ir(가다)가 irse가 되는 순간, 문장의 무게는 목적지에서 ‘떠나는 행위’로 옮겨간다. Vamos가 ‘어디로 가자’라면 Vámonos는 ‘이제 여기서 나가자’다. 사직서로 치면 이직할 회사가 정해진 사람의 퇴사와, 일단 오늘 그만두는 사람의 퇴사쯤 되겠다. 이 노래는 후자다. 도착지를 노래하지 않는다. 지금 서 있는 자리를 견디지 못하는 노래다.
더 결정적인 단어는 Perdernos다. perder는 ‘잃다’이고, 여기에 nos(우리를)가 붙는다. 직역하면 ‘우리를 잃어버리자’다. 지도를 접고 골목을 헤매는 관광객의 낭만이 아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는 말이다. 영어 파트에는 이름을 바꾸고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고 묻는 대목이 있다. 영어로 묻고, 스페인어로 실행한다. 고갱이 파리를 떠난 것도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파리의 고갱을 잃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문법은 한 걸음 더 나간다. ‘해가 뜰 때까지’라는 hasta que salga el sol에서 salga는 평범한 현재형(sale)이 아니라 접속법이다. 스페인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확정되지 않은 일에 이 꼴을 쓴다. 해 뜨는 시각을 알고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말이 아니라, 해가 뜰지 안 뜰지 모르는 채로 계속 달리겠다는 말이다. 그 앞의 Acelera는 명령형이다. 부탁이 아니라 액셀을 밟으라는 지시다. 그런데 바로 뒤 Si es contigo에서는 가정법이 아니라 그냥 현재형(es)을 쓴다. ‘혹시 너와 함께라면’이 아니라 ‘너와 함께인 게 사실이라면’이다. 조건인 척하지만 이미 정해놓은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목적지는 흐릿하고, 기한은 없고, 상대만 확정돼 있다. 여행 계획표로 옮기면 숙소도 귀국편도 없고 동행 한 명만 정해진 여행이다. 여행사 직원이 보면 말릴 일이지만, 사랑 노래로서는 꽤 정직한 설계다.
청하에게 스페인어가 이번에 처음 집어 든 소품은 아니다. 2021년 정규 1집의 제목이 Querencia(퀘렌시아)였다. querer(원하다, 사랑하다)에서 온 이 단어는 투우장에서 지친 소가 돌아가 숨을 고르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 앨범에는 푸에르토리코 래퍼 과이나(Guaynaa)와 함께한 ‘Demente’가 있었고, 스페인어 버전도 따로 나왔다. 붉은 천 앞에서 달리기만을 요구받는 소에게조차 버티는 자리가 허락된다. 그 사실은 사람에게도 묘한 위로가 된다. 5년 전 청하는 그 자리를 자기 안에서 찾았다. 이번에는 지도 위에서 찾는다. 같은 사람이 같은 질문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고 있다.
물론, 케이팝의 라틴 장르 차용을 ‘분위기용 이국 소품’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런 곡이 실제로 적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 곡의 크레딧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작사자 명단에 청하 본인의 이름이 세 버전 모두에 들어 있다. 발음 디렉팅이 보컬 디렉팅과 별개 항목으로 적혀 있다. 스페인어 파트 작사에 참여한 사람이 백보컬로도 들어가 있다. 이런 배치는 대개 원어민의 귀를 옆에 두고 녹음했을 때 생긴다. 스페인어 버전까지 낼 거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한 것, 이 곡에서 가장 성실한 부분이다.
순서도 의미가 있다. 직전 싱글 ‘Save me’는 흔들리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이해해보려는, 안으로 파고드는 곡이었다. ‘México’는 같은 감정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앞 곡이 방 안에서 쓴 일기라면 이번 곡은 현관문을 여는 장면이다. 둘을 이어 들으면 후렴의 브라스가 터질 때 감정이 한 칸 더 크게 온다. 라틴 리듬이 취향에 맞지 않아 후렴에서 튕겨 나온다면, 스페인어 버전을 권한다. 영어가 섞이지 않으면 오히려 소리로만 들려 편할 때가 있다.
멕시코 현지 선공개가 정확히 어느 무대였는지, 이 곡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곡이 오래 창고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 돌지만, 확인되지 않은 소문 위에 해석을 쌓는 일은 하지 않겠다. 소문 위에 지은 해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는 다들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고갱의 그림 제목은 세 개의 질문이었다. 청하의 노래는 그중 마지막 하나만 남긴다. 어디로 가는가. 이 곡의 멕시코는 좌표가 아니다. 지도 위의 그 나라이면서, 동시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상태에 붙인 이름이다. Perdernos, 우리를 잃어버리자. 이 말이 무섭지 않고 시원하게 들린다면, 아마 지금 조금 지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쯤은 ‘Save me’부터 ‘México’까지 이어 들어도 좋다. 사직서는 그다음에 써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