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차트 100위 안에 들면 서울에서 거제까지 뛰어가겠다고 메이가 말한 적이 있다.
미나미는 일본 치바까지 헤엄쳐서 가겠다고 했다.
들으면 패기 넘치는 공약 같다. 뒤집으면 100위 안에 드는 것조차 자기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어차피 그럴 일이 없으니 말이 안 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이 팀은 1위를 했다.
데뷔하고 841일이 지나 있었다.
리센느는 장면을 뜻하는 SCENE과 향기를 뜻하는 SCENT를 붙인 이름이다.
향을 맡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른다. 음악으로 사람 마음에 한 장면을 새기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앨범마다 메인 향이 있고 그 향을 음악에 녹인다. 데뷔 때부터 이것만은 분명했다. 무엇을 하는 팀인지 흐릿한 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팀은 색이 있었다.
다만 아무도 보지 않았다.
소속사는 더뮤즈 엔터테인먼트다. 2020년 12월에 자본금 1천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다. 대표 이주헌은 버클리 음대를 나와 보컬 듀오로 데뷔했던 사람이고, 프로듀싱 경영진이 전부 버클리 출신이다.
이 회사에 아티스트는 리센느 한 팀뿐이다. 회사 전부를 한 팀에 걸었다.
처음 몇 년은 대표가 직접 운전을 했다고 한다. 방송국마다 프로필 수백 장을 들고 다니며 담당자에게 손편지를 썼다. 첫 음악방송 날에는 이사가 인이어 착용법을 몰라 다른 팀 매니저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음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매니지먼트는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캐스팅도 대표가 발로 뛰었다. 리더 원이를 데려오려고 경남 거제까지 내려갔고, 미나미 때문에 일본 치바까지 날아갔다.
원이, 미나미, 리브, 메이, 제나. 한국인 넷에 일본인 하나.
데뷔 시점의 평균 나이가 만 16세였다. 열일곱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의 명운을 지고 시작했다.
선공개곡 yoyo를 내고 데뷔곡 uhuh, 6월에 Counting Star. 음악은 청량하고 세련됐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는데 뜨지는 않았다.

2024년 8월에 첫 미니앨범 신드롬이 나왔다. 타이틀이 LOVE ATTACK이었다.
지금 리센느 하면 나오는 그 곡이다.
그때도 뜨지 않았다. 한 웹예능에서는 코미디언들이 곡 제목을 듣고 하트 어택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멜론 일간 차트 904위로 처음 이름을 올렸는데, 사실상 차트에 없는 것과 같았다.
100위 안에 들면 거제까지 뛰겠다는 공약이 나온 것이 이 무렵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
유튜브 라이브를 자주 켰다. 밤 10시 반에 시작한 라이브가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이어져 5시간을 넘긴 적이 있고, 한 번은 7시간 16분을 찍었다.
큰 회사의 시스템이 없으니 콘텐츠와 진심과 체력으로 버틴 시간이었다.
자체 콘텐츠도 계속 올렸다. 지금까지 쌓인 것이 이백 편이 넘는다. 브이로그, 게임, 여행, 커버곡, 멤버 개인 코너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냥 계속 올렸다.
데뷔하고 한참을 음악방송에 나가지 못하던 구간이 있었다. 큰 회사가 아닌 신인이 흔히 겪는 일이다.
보통 이 구간에서 팀이 조용히 사라진다. 노출이 없으니 팬이 늘지 않고, 팬이 늘지 않으니 다음 앨범의 예산이 나오지 않는다.
2025년 2월에 미니 2집 글로우업, 드라마 OST, 6월에 필밤, 9월에 고백주파수, 11월에 미니 3집 립밤. 꾸준했다. 립밤의 초동이 10만 4406장으로 자체 최고였다.
그래도 대중적인 한 방은 오지 않았다.
2026년 2월, 리더 원이가 개인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이름은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띄어쓰기가 없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이 개인 채널을 여는 것은 흔한 선택이 아니다. 원이도 나중에 개설 직전까지 부담이 정말 컸다고 말했다. 그래도 팀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서 했다고.
3월에 미나미가 갸루 분장을 하고 나왔다. 거제 출신인 원이가 너 지금 이러고 거제 가잖아, 거제 시민들한테 혼나, 하고 핀잔을 주자 미나미가 받아쳤다.
거제 야호.
맥락도 없고 뜻도 분명하지 않은 이 한마디가 알고리즘을 통과했다. 야호는 일본에서 안녕과 비슷한 인사말이다.
거제 편에 나온 통닭집에 관광객이 몰렸고, 거제시가 멤버 전원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나중에는 고양시와 수원시와 경주시까지 이어졌다.
제나와 원이가 경상도 사투리로 주고받는 영상이 터지면서 제나에게는 신라 공주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동안 리브와 메이는 이 채널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팬들이 더 애가 탔다. 6월 12일에 둘이 같이 등장했는데, 리브가 30분 내내 무리수 개그를 던지다가 마지막에 난데없는 발가락 개인기로 웃겼고, 메이는 앞선 멤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광고까지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저희도 리센느입니다, 하고 외친 그 영상의 조회수가 446만이다.
다섯 명 전원이 각자의 캐릭터로 데뷔를 한 번 더 한 셈이다.
유튜브 코리아 쪽에서 만든 콘텐츠에 멤버들이 나온 적이 있다. 한 시간 가까운 긴 영상인데 칠십만이 넘게 봤다.
유튜브 코리아가 영상을 올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말이 있었다. mbc의 딸, kbs의 아들, 엠넷의 딸 같은 말은 익숙한데 리센느는 유튜브의 딸들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방송사가 키우지 않은 팀을 플랫폼이 키웠다는 사실이 그 한 줄에 다 들어 있다.
레거시 체제였다면 기회도 받지 못하고 사라졌을 팀이라는 말도 있었다.
밈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얘네 노래는 뭐지, 하고 찾아 듣기 시작했다.
여기가 이 팀의 결정적인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들어와 보니 볼 것이 이백 편 있었다.
보통 역주행은 곡만 뜨고 팀은 뜨지 않는다. 여기서는 유입된 사람이 그날로 팬이 됐다. 성장 스토리인 줄 알았는데 자체 콘텐츠를 이백 편 올려두고 기다린 팀이었다고 누군가 적었는데, 그 말이 맞다.
2024년 8월에 나온 LOVE ATTACK이 멜론 일간 차트에 슬금슬금 재진입하더니 빠르게 올라갔다. 6월에 10위 안에 들었고 실시간 최고 5위를 찍었다. 그리고 2026년 7월 8일 밤 10시에 멜론 1위를 했다.
발매하고 1년 11개월 만이었다.

100위 안에 들면 거제까지 뛰겠다던 공약이 여기서 소환됐다. 100위가 아니라 1위를 해버렸으니 이제 그 공약을 어떻게 지킬지가 남았다.
100위에 걸린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작년 앨범의 타이틀곡이 멜론 100위 안에 들면 기부를 하겠다는 공약이었다. 그것이 진짜로 들어가버려서 공약이 살아났다.
기부는 팬덤 이름까지 같이 올려 천만 원을 했다. 그리고 데뷔일이 3월 26일이라 3.26킬로미터를 걷는 것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걷기에 참여한 거리는 팬들도 따로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십일 분 내내 혼자 걸으면서 떠든다. 그게 전부다.

3.26킬로미터를 계속 말해주니 데뷔 날짜를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반응이 있었다. 오디오가 비지 않는 것은 재능이라는 말도 있었다. 혼자 카메라를 들고 십일 분을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집으로 붙인 티도 별로 나지 않는다.
천만 원 이야기에 달린 반응이 조금 셌다. 회사 적자도 심하고 멤버들 정산도 아직 안 됐다면서 독립유공자 후손분들 위해서 천만 원이나 기부를 한다니, 진짜 뭐냐 이 회사 이 멤버들, 하는 말이었다.
그 아래로 자기도 몇 킬로 걸었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어졌다. 이모가 50키로 기부햇어 소녀, 아푸지 말고 좋은 무대 마니 보여줘, 라고 적은 사람이 있었다. 이모라고 자기를 부르는 사람이 오십 킬로를 걸었다는 얘기다.
3킬로를 걷는데 밤이 되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도 있었다. 마실 나갔다가 맛집 가고 카페 갔다가 밤이 된 것 아니냐고.
그건 맞는 말이다. 3킬로가 그렇게 오래 걸릴 리 없다.
7월 8일에 리메이크 싱글 Pretty Girl이 나왔다. 2008년 카라의 곡이다.
역주행으로 뜬 팀이 다음 카드로 리메이크를 꺼낸 것인데 나는 처음에 의아했다. 지금은 신곡을 밀어야 하는 시점 아닌가 싶었다.
영상 아래에 모여든 사람들이 리센느의 팬이 아니었다. 카라의 팬들이었다.
카밀리아 입니다, 리센느의 떡상을 축하드리고 우리 카라의 노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날 힘들었던 시절은 잊고 이젠 꽃길만 걸으시길 바라요, 하고 누군가 적었다. 너희들이 카라의 뒤를 이을 완벽한 그룹이다, 카라보다 더 흥해라, 지나가던 카밀리아, 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리메이크가 나오면 원곡의 팬들이 가장 까다로운 법이다. 여기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이유를 설명해준 사람이 있었다. 공사장 앞에서 팬미팅을 하던 카라 멤버들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펑펑 울면서 1위를 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 서사가 비슷해서 리센느한테 관심이 많이 간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카라를 알리려고 고생했던 한승연이 곧 리센느를 알리려고 고생했던 원이이고, 그래서 프리티걸이라 서사가 완성된다고.
읽고 나서야 알았다. 카라도 프리티걸로 처음 1위를 했다. 그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던 팀이었다.
같은 곡으로 18년 뒤에 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음악방송에서 니콜이 깜짝 등장해 마지막 부분을 같이 불렀다. 나는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고, 나중에 봤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니콜 누나가 18년 만에 프리티걸로 공중파 1위를 했다고, 고맙다 리센느 축하해, 하고 누군가 적었다. 한참 후배인데도 니콜이 리센느 쪽을 향해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이더라는 말도 있었다.
그 아래 이 줄을 보고 한참 멈췄다.
하라야 하늘에서 잘 듣고 있냐. 카밀리아였던 게 자랑스럽다.
옆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하라야 오늘 프리티걸 공중파 1등했다, 너도 좋았으면 좋겠어.
여기에만 좋아요가 만 육천 개 넘게 달려 있었다.
나는 카밀리아도 리마인도 아니다. 카라는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본 정도다. 그래서 이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노래 하나가 십몇 년이 지나 이렇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곡과 똑같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거기 달린 답도 나쁘지 않았다. 멜로디와 비디오와 안무를 거의 바꾸지 않은 것은 리메이크라기보다 오마주에 방점을 둔 취지로 읽힌다는 것이었다.
점잖게 쓴 문장이다. 나는 그냥 건드리지 않은 것이 정답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7월 14일 더쇼 1위. 데뷔 841일 만이었다.

수상 소감 때 다들 울었다. 841일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사이에 그만두고 싶었던 날이 없었을 리 없다.
1위가 발표되고 나서 미나미를 안아준 사람이 있었다. 같이 후보에 올라 있던 유스피어의 시안이다. 둘은 예고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진 쪽이 이긴 쪽을 안아준 것인데, 그 밑에 이런 말이 붙어 있었다. 유스피어도 누군가의 리센느.
이 한 줄이 좋아서 한참 봤다.
대기실에는 스태프들이 깜짝 파티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걸 보고 멤버들이 한 번 더 울었다. 대표는 객석에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나중에 예능에 나가서는 매니저 이야기가 나왔다. 리브가, 전날 저희가 피곤할까 봐 집에서 과일 도시락도 싸오셨다고 했다. 휴무였는데도. 원이는 숙소에서 봄동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을 때도 요즘 유행이라고 재료를 다 사오셨다고 했다.
정작 그 매니저 본인은 이렇게 말했다. 잠도 못 자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지금까지 다섯 명이 너무 열심히 해줬다고. 그런 것밖에 못 해주지 않느냐고, 대신 레슨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하는 건 본인들이니까.
치킨을 먹다가 다섯 명이 다 울었다.
이 팀을 따라다니다 보면 우는 사람이 계속 늘어난다. 멤버가 울고, 매니저가 울고, 18년 전에 같은 노래를 부른 사람이 와서 울고, 그 노래를 듣던 팬들이 울고, 옆에서 진 팀이 와서 안아준다.
이게 이 팀의 제일 큰 능력이라고 적은 사람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자기 일처럼 축하하고 눈물을 흘리는 게, 보는 사람까지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읽고 나서 내 경로를 되짚어 봤는데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무대를 보고 이 팀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이 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우는 걸 보다가 좋아하게 됐다.
컴백곡 영상 아래에 긴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재수생이 쓴 것이었다.
들으면서 울었다고 했다. 친구들은 원하는 대학에 가서 스무 살 청춘을 가득 만끽하고 있는데 혼자 독서실에 박혀 공부하고 있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올해도 목표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요즘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고.
좋아요가 육천 개 넘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진짜는 그 아래였다.
재수생 댓글을 보고 자기도 울었다고 누가 적었다. 댓글 같은 것을 안 쓰는데 30대 후반에 실직하고 취업 준비 중이라고. 나름 치열하게 매일 열심히 살았는데 남들은 다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일하는 나이에 자기는 아직도 그러지 못해서 힘들었다고.
십몇 년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같은 영상 아래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늦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여서 그런 것 같다. 이 팀이 2년 넘게 안 되다가 됐으니까.
나는 이런 데 잘 울컥하지 않는 편인데 이건 조금 그랬다.
아래에 이런 것도 있었다. 고3인데 슬럼프가 세게 와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리센느 영상을 틀어놓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대학에 합격하면 제대로 팬이 되겠다고.
합격하면 온다는 사람은 꼭 왔으면 좋겠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쓴 것도 있었다. 결이 조금 달랐다.
나이 먹고 보니 왜 어른들이 어린 친구들의 꿈을 응원하는지 알 것 같다고 누가 적었다. 잘돼서 예쁜 게 아니라, 아직 꿈을 믿고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서 어느새 잊고 살았던 우리 어린 날이 보여서 그런 것 같다고.
살다 보면 꿈보다 현실을 배우고 도전보다 포기에 익숙해지는데, 리센느를 보고 있으면 괜히 한 번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 다음 줄에서 좀 멈췄다.
내가 포기한 꿈을 대신 이뤄달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저 아이들의 노력만큼은 현실에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대리만족이라는 말을 안 쓰려고 일부러 저렇게 적은 것 같다. 대리만족은 내가 못 한 걸 남이 해주는 것이고 저건 그게 아니다. 자기 몫은 이미 진 걸로 치고 남의 몫만은 안 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돌려받지 않겠다고 미리 못을 박아둔다.
어른들이 리센느를 응원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때 꿈 많았던 자기 자신도 함께 응원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고 그 사람은 끝냈다. 그러니 꼭 잘됐으면 좋겠다고. 아주 많이.
앞의 재수생과 실직한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자리에 모여 있다. 앞의 둘은 아직 하는 중이라 자기 이야기를 했고, 이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결국 자기 이야기를 했다.
1위를 받고 원이가 한 말이 있었다. 이 트로피가 노력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꿈을 향해 달리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무대에서는 흔히 하는 말이다. 다만 저 아래에 그 말을 자기한테 하는 걸로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노력이 헛되지 않는다는 같은 문장을 독서실에 있는 사람과 삼십대 후반에 다시 이력서를 쓰는 사람과 이미 다 접은 사람이 각자 다르게 읽었다.
거제 야호가 웃겨서는 아니다. 그건 계기였을 뿐이고, 밈은 수도 없이 생겼다 사라진다.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람 냄새다. 무대 위의 아우라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갸루 분장을 하고 망가지고, 추리닝을 입고 사투리를 쏟아내고, 맨손으로 개지렁이를 잡아 낚싯바늘에 꿴다. 그런데 무대 영상을 찾아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단련돼 있는지 또 알게 된다. 그 낙차가 매력이다.
다른 하나는 절실함을 전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절실한 팀은 지금도 수백이다. 절실함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면 다들 사랑받아야 한다.
리센느는 저희 정말 간절합니다, 같은 호소를 한 적이 없다. 그냥 했다. 되든 안 되든 유튜브를 켜고, 사투리를 쓰고, 갸루를 연구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러니 행동에 절실함이 묻어났고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아챘다.
전시된 절실함은 동정을 얻고 전시되지 않은 절실함은 응원을 얻는다. 동정은 클릭 한 번으로 끝나지만 응원은 구독이 되고 스트리밍이 된다.
세 번째는 앞에 쓴 것이다. 이 팀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자꾸 운다.
보통은 무대에 선 사람을 보고 팬이 되는데 여기서는 순서가 좀 다르다. 매니저가 울고 선배가 울고 예전 팀의 팬이 와서 울고 옆 팀이 안아주는 걸 계속 보다가, 어느새 나도 저 줄에 서 있게 된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응원을 옮긴다.
그러니까 이 팀이 사람을 붙잡는 방식은 곡이나 캐릭터보다 응원하는 자리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한번 앉으면 안 봐도 될 영상까지 보게 된다.
자체 콘텐츠를 이백 편 올린 팀은 지금도 수십이다. 그중 역주행이 난 것이 여기 하나다.
계속 올린 것은 필요조건이었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곡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이백 편도 소용없었을 것이고, 역주행이 나지 않았다면 이백 편은 그냥 조회수 낮은 영상 이백 개였을 것이다.
다만 접지 않고 계속 만들어두었다는 것이 운이 왔을 때 받아낼 그릇은 됐던 것 같다.
가장 정확한 요약은 이 한 줄이라고 생각한다. 물 들어오니 노 저어보자가 아니라, 노를 계속 젓고 있었는데 물이 들어왔다는 것.
그럼 이제 다른 팀들도 다 이 길로 갈까. 이미 가고 있다. 다만 자체 콘텐츠 시장도 곧 포화될 것이고, 그때는 또 다른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절반이 내 추측이다. 걸러 들으면 좋겠다.
LOVE ATTACK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번도 빛난 적 없었던.
그게 자기들 이야기처럼 들리니 사람들이 더 모였다. 노래가 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멤버들에게서 발견된 매력이 묻힐 뻔한 노래를 다시 불러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케이팝은 빨리 변하고 역주행의 관심이 언제까지 갈지도 모른다. 이 팀이 다음 앨범을 어떻게 푸는지가 진짜 볼거리라고 생각한다. 역주행은 한 번이고 다음 앨범은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니까.
다만 이 팀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자리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자리까지 오는 데 1천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버틴 시간이 있었다.
향기 하나 남기겠다고 지은 이름인데, 이제 막 사람들이 그 향을 맡기 시작한 것 같다.
거제까지 뛰어가겠다던 공약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100위가 아니라 1위를 해버려서 뛸 거리가 얼마인지 아무도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