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로 마음을 완전히 굳힌 상태였다.
부모님이 숙소까지 올라와 계셨다. 대표가 붙잡고 이사가 붙잡았는데도 아니요 안 돼요, 하고 답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원이가 들어갔다.
메이는 그때를 이렇게 설명했다. 잘하다가 너무 힘들어져서 자기한테 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너무 잘하는 친구들도 많고 언니들도 많은데 자존감은 계속 떨어지고 채울 곳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나를 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채울 곳이 없었다는 말에 좀 오래 머물렀다.
자존감이 바닥난 사람에게 우리가 보통 하는 말은 너 잘한다, 너 괜찮다, 쪽이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못 믿는 상태에서는 그 말이 안 담긴다. 붓는 족족 빠진다. 대표와 이사가 실패한 것도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방식밖에 쓸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어른이 어린 연습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메이는 2008년생이다. 데뷔했을 때 만 열다섯이었으니 이 일은 그보다도 앞이다.
원이가 한 말은 결이 달랐다.
이 넷은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가 딱 한 명 있으면 너무 좋겠고, 메이는 말도 잘하니 너무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자꾸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다고.
이건 칭찬이 아니다. 칭찬은 사람을 높이는 말이고 저건 자리를 그려주는 말이다.
너는 잘한다, 가 아니라 네가 빠지면 이 그림이 안 된다, 였다.
바닥까지 간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원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존감은 남이 채워줄 수 없지만 자리는 남이 정해줄 수 있다. 새는 독을 못 막으면 그 독을 어디에 놓을지라도 정해줘야 한다.
부모님은 다른 걸 물었다.
딸에 대한 것을 계속 묻다가, 네가 봐도 정말 괜찮은 회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날의 진짜 관문은 이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딸의 재능은 이미 딸 본인이 부정하고 있었으니 부모에게 남은 확인은 회사뿐이었다.
그때 그 회사는 자본금 1천만 원으로 시작해 아티스트가 한 팀뿐인 곳이었다. 대표가 직접 운전을 하고 방송국마다 손편지를 돌리던 시기다. 스무 살 연습생이 남의 부모 앞에서 네, 괜찮은 회사입니다, 라고 대답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원이는 회사를 보증하지 않았다.
어머니, 저 한 번만 믿어보세요.
질문은 회사에 대한 것이었는데 답으로 자기를 내놓았다. 회사가 못 미더우면 나를 잡으시라는 뜻이다. 그 방에서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회사 사람이 하면 영업이 되고 같이 연습하는 애가 하면 각서가 된다.
이 대목을 미담으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고 생각한다.
원이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자기도 말하면서 무서웠다고.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되는 느낌인데, 하고.
확신이 있어서 붙잡은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원이는 2004년생이고 그 무렵 스무 살이었다. 팀은 뜨지 않았고 자기 앞도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사람이 불안한 사람을 붙잡은 것이다. 자기 앞길도 모르면서 남의 앞길에 도장을 찍었다.
만약 리센느가 끝내 안 됐다면 저 말은 미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열몇 살짜리의 몇 년을 붙잡아둔 오지랖으로 남았을 것이고, 원이는 그걸 오래 기억했을 것이다. 결과가 좋아서 좋은 이야기가 됐다는 사실을 원이 본인이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웠다는 말이 그 증거다.
용기라는 단어는 확신이 있는 자리에서는 쓰지 않는다.
원피스의 루피가 생각났다.
루피는 밀짚모자 해적단에서 제일 유능한 사람이 아니다. 배를 못 몬다. 요리도 못 하고 치료도 못 하고 항해술은 아예 없다. 그가 하는 일은 하나다. 각자의 자리에서 막혀 있던 사람을 찾아가 내 동료가 되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루피가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실력이 아니다. 그 사람이 아직 못 버린 게 뭔지를 본다.
나미가 아를롱 파크에서 더는 못 버티고 루피, 도와줘, 하고 말했을 때 루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어 나미 머리에 얹었다. 남에게 그 모자를 맡긴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전에 그 모자가 망가졌을 때 손수 꿰매준 사람이 나미였다.
그러니까 그건 시혜가 아니라 빚이었다.
원이가 그날 벗어서 얹은 것은 자기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시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메이가 없으면 이 팀이 안 된다고 원이는 실제로 판단하고 있었다.
원이도 나중에 개인 채널을 열 때 개설 직전까지 부담이 정말 컸다고 말한 사람이다. 만능이라서 겁이 없는 게 아니다. 남이 자기를 포기한 자리에 가서 아직 안 끝났다고 말할 수 있으면 선장이다.
방송에서 짓궂은 가정이 하나 나왔다. 그때 그만뒀는데 다른 멤버가 들어와 지금처럼 1위를 하고 사랑받는 걸 어딘가에서 지켜봤다면 어땠겠느냐는 것이었다.
메이의 대답이 좋았다. 일단 장이 진짜 꼬였을 것 같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배가 아팠을 것 같다고, 내가 조금만 더 버텨볼 걸, 했을 것 같다고.
배알이 꼴렸을 거라고 하면 밉게 들리고 배가 아팠을 거라고 하면 뻔하다. 장이 꼬였을 것 같다고 하니 둘 다 피해간다. 이 사람이 왜 팀에서 말을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지 저 한마디에 들어 있다.
원이의 대답은 또 달랐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그 자리는 원래 자기 자리가 아니었던 거라고 했다. 그리고 메이가 없었으면 1등을 못 했을 거라고, 메이가 있기 때문에 잘되는 거라고 덧붙였다.
붙잡은 쪽이 공을 안 가져간다.
나는 이걸 리더십 이야기로 읽지 않았다.
스무 살이 남의 부모 앞에서 저를 믿어보시라고 말했다는 게 자꾸 걸렸다. 나는 그 나이에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남의 인생은커녕 내 인생을 두고도 우리 부모한테 나 한 번만 믿어봐, 라고 말해본 기억이 없다.
대개는 그렇게 산다. 확신이 서면 그때 말하겠다고 미루고, 확신은 대체로 끝까지 안 선다.
원이가 다른 점은 확신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확신이 없는 채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지키려고 그 뒤로 2년을 썼다. 순서가 반대다. 보통은 준비가 끝나면 약속을 하는데 이 사람은 약속을 먼저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메이는 남았고 팀은 1위를 했다.
다만 그건 나중 일이고, 그날 그 방에는 아무 보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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