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야호로 미나미를 처음 안 사람이 많을 텐데요. 그래서 캐릭터가 잘 얻어걸린 멤버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근데 이 사람은 그렇게 가볍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3, 4학년쯤에 케이팝을 접했고, 도쿄에서 열린 트와이스 공연을 보고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그리고 열네 살쯤에 부모님한테 이렇게 말하고 혼자 한국에 옵니다.
열여덟이 될 때까지 데뷔 못 하면 돌아오겠다.
열네 살이 저런 말을 하고 바다를 건넜다는 게 저는 아직도 잘 실감이 안 나요.
한국에서 처음 이름을 알린 게 MBC 방과후 설렘이었습니다. 경쟁률이 1048대 1이었어요.
일본인이라 발음이나 문화 차이 같은 불리한 점이 있었는데도 파이널까지 올라갑니다. 어린 나이에 재능이 확실했던 거죠.
그리고 마지막 문턱에서 떨어집니다.
보통 이런 얘기는 서바이벌 끝나고 바로 다른 회사에서 데뷔했다로 흘러가잖아요. 미나미는 그냥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꿈이 접혀가던 시점에 더뮤즈 대표가 일본까지 찾아옵니다.
바다를 건너서 이렇게 와 주시는데 그때 그래서 진심을 엄청 느꼈던 거 같아.
미나미랑 가족이 감동한 게 하나 더 있어요. 계약서에 학교를 무조건 졸업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넣었다는 겁니다. 이 아이의 현실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였던 거죠.
그래서 다시 한국에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미나미는 그냥 캐스팅된 게 아니라, 일본까지 직접 가서 데려올 정도로 이미 확신을 준 멤버였던 거예요.
2024년 2월, 리센느의 다섯 멤버 중 가장 먼저 공개된 사람이 미나미였습니다.
중소 기획사는 회사 이름만으로 사람을 못 모으니까 제일 먼저 보여주는 얼굴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거기에 미나미를 놨다는 건 그만큼 카드가 확실했다는 뜻입니다. 데뷔 직전까지 갔던 스토리, 기다리는 팬, 일본 출신이라는 글로벌 전략, 실력. 이걸 한꺼번에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데뷔 쇼케이스에서 뮤비 설명을 리더가 아니라 미나미가 했습니다. 불타오르는 꽃의 향기를 찾아가고 그 꽃을 태워 리센느의 향기를 영원히 남긴다는 설명이었어요.
이때부터 미나미는 그냥 멤버 한 명이 아니라 리센느가 어떤 팀인지 설명하는 멤버가 됩니다.
데뷔했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LOVE ATTACK이 뜨기 전까지 미나미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홍보하려고 안 나간 채널이 없을 정도로 스트리머들이랑 합방했고, 외국인 최초로 프로야구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복면가왕에도 혼자 나갔어요.
그러다 겨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한쪽에서는 바이럴 돌린다고 욕을 먹었습니다.
이게 중소돌의 진짜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안 보이고, 움직이면 억지로 보인다고 욕을 먹고.
원이 채널에 1일 일본어 선생님으로 불려나온 게 시작이었습니다. 일본어 가르쳐주다가 슬슬 발동이 걸리더니 다음 영상에서는 아예 분장을 하고 나타났어요.
갸루가 유명한 치바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갸루 세대라 원래부터 익숙했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멤버들한테 갸루를 전파하고 다녔대요 ㅋㅋ
여기서 흥미로운 지적을 하나 봤는데요. 갸루는 지금 일본의 유행이 아닙니다. 전성기가 헤이세이 전반기, 그러니까 1990년대에서 2000년대예요. 지금 도쿄 거리에서 갸루 찾기 어렵고 요즘 하위문화는 지뢰계 쪽이죠.
그러니까 미나미가 한국에서 불러낸 건 본국에서는 이미 저문 시대의 유령 같은 겁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한테 시간은 이상하게 흐른다고 하잖아요. 떠나온 사람의 기억 속 고향은 떠나던 날에 멈춰 있고요.
그리고 갸루 문화의 본질이 뭐냐면 나를 좀 봐달라는 거예요. 지뢰계가 정해진 복식 안에 자기를 숨기는 문화라면, 갸루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끝없이 달라지려고 하는 문화입니다. 더 화려하게, 더 눈에 띄게.
인기 없는 중소 아이돌로 몇 년을 버틴 사람이 하필 그 문화를 골라서 그렇게 성실하게 연구했다는 거. 저는 이게 우연 같지 않았어요.
6월 21일에 미나미가 갸루 캐릭터를 접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슬슬 갸루랑 빠이빠이 할 때가 됐다. 원래 나는 갸루가 아니니까 이제 진짜 나의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것.
이유가 좀 뭉클했는데, 갸루 문화를 깊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재미만 보고 연구했던 거라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한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제일 크게 터진 캐릭터를 제일 잘 나갈 때 스스로 접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잖아요.
이후 인터뷰에서는 은퇴가 아니라 가수로서의 매력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 쪽으로 정리했더라고요. 어느 쪽이 최종인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나미는 웃긴 캐릭터가 잘 걸린 멤버가 아닙니다.
이미 있던 좋은 음악이랑, 오래 쌓인 자기 서사를, 대중이 다시 발견하게 만든 사람이에요.
열네 살에 혼자 바다를 건넜고, 1048대 1을 뚫고 결승까지 갔다가 떨어졌고, 돌아갔다가 다시 왔고, 2년 동안 안 나간 방송이 없었고, 그러다 한마디로 판을 뒤집었습니다.
처음에 그냥 웃긴 멤버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여기까지 보고 나면 좀 다르게 보일 거예요. 가벼워 보이던 이미지 뒤에 전혀 가볍지 않은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방과후 설렘으로 뿌리를 심고 리센느라는 꽃을 피운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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