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미를 처음 본 건 거제 야호라는 말을 통해서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화면 속의 그 사람은 과하게 밝았고 과하게 화려했고 무엇보다 웃겼다. 나는 그 영상을 몇 번인가 돌려 봤고, 잘 얻어걸린 캐릭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그 뒤에 알게 된 것들을 여기 적어둔다. 순서는 대체로 시간 순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미나미는 열네 살에 혼자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케이팝을 접했고, 도쿄에서 공연을 한 번 봤고,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은 그 나이의 아이들이 흔히 한다. 대부분은 하고 잊는다.
미나미는 잊지 않았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정확히는 반대라기보다 걱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미나미는 안 된다고, 지금 가지 않으면 늦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약속을 하나 하겠다고 했다. 열여덟이 될 때까지 데뷔하지 못하면 일본으로 돌아와 공부를 하겠다고.
열네 살이 그런 말을 하고 바다를 건넜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잘 실감하지 못한다.
연습생이 무엇이고 계약이 무엇이고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를 부모님께 하나하나 설명한 것도 미나미였다고 한다. 일본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서 부모님은 모르셨다. 열네 살이 그걸 조사해 어른들 앞에서 설명하는 저녁이 그 집에 있었던 셈이다.
비행기표를 급하게 끊었다. 출국 사흘 전에 한국어 레슨을 잡았다.
사흘 동안 배운 것은 한글 쓰는 법과 죄송합니다, 이 두 가지였다.
죄송합니다를 먼저 배우라고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낯선 나라에 가면 죄송할 일이 많을 테니 사과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참 멈췄다.
외국에 가는 딸에게 보통은 안녕하세요나 고맙습니다를 먼저 가르친다. 그 어머니는 사과를 먼저 가르쳤다.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네가 모르는 것이 많을 테니, 그때 마음 다치지 말고 이 말을 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짐작할 뿐이다. 물어본 사람은 없다.
그로부터 5년쯤 지났다.
미나미가 가장 좋아하는 칭찬은 한국인보다 한국 사람 같다는 말이라고 한다. 말하는 데 걸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제일 기분 좋다고 했다.
사흘로 시작한 언어였다.
경상도 사투리도 배웠다. 원이가 장난삼아 뜻도 알려주지 않고 누구 아버지 뭐 하시노, 를 가르쳤는데 너무 잘해서 그 뒤로 방송마다 써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일본에 가서도 한다. 경상도 억양이 일본어 억양과 닮은 데가 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미나미는 말했다.
두 억양이 닮았다는 것은 그 사이의 바다가 생각보다 좁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열네 살에는 아주 넓어 보였을 바다다.
한국에서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였다. 경쟁률이 1048대 1이었다고 한다.
발음이나 문화 차이 같은 불리한 조건이 있었는데도 결승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마지막 문턱에서 떨어졌다.
이런 이야기는 보통 다른 회사에서 곧 데뷔했다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미나미는 그냥 일본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아마 학교에 갔을 것이고 밥을 먹었을 것이고 가끔 그 무대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 오디션의 심사 자리에 장도연이 앉아 있었다. 5년 뒤에 두 사람이 살롱드립에서 다시 만났다.
장도연이 먼저 기억을 꺼냈다. 일본에서 온 참가자들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고시히카리 햇반을 선물로 줬고, 그것을 집에 가져가 아주 맛있게 데워 먹었다고 했다. 그 뒤로 일본에 가면 쌀밥을 찾아 먹게 됐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선물을 준 사람이 미나미였다.
무엇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일본에 맛있는 밥이 있으니 그것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열다섯 살 아이가 낯선 나라의 오디션장에 가면서 챙긴 것이 햇반이었다는 것도 좋았고, 그것을 받은 사람이 5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도 좋았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대개 이렇게 사소하다.
그날 미나미는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장도연은 나도 5년 동안 계속 여기 붙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고 답했다.
한쪽은 그 자리에 남으려고 5년을 견뎠고 한쪽은 그 자리에 가려고 5년을 견뎠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꿈이 접혀가던 무렵에 더뮤즈 대표가 일본까지 찾아왔다.
바다를 건너서 그렇게 와 주는 걸 보고 진심을 크게 느꼈다고 미나미는 말했다.
가족이 마음을 놓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학교를 반드시 졸업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데뷔시켜 주겠다가 아니라 이 아이의 현실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예술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줬다.
지금은 스케줄이 바빠져 자퇴했다. 그 얘기를 하면서도 미나미는 대표님은 한 번 한 약속은 지키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그냥 캐스팅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까지 직접 가서 데려올 만큼 이미 확신을 준 쪽이었다.
2024년 2월, 다섯 명 중 가장 먼저 공개된 얼굴이 미나미였다.
회사 이름만으로 사람을 모을 수 없는 팀에게 첫 얼굴은 중요하다. 거기에 미나미를 놓았다는 것은 카드가 확실했다는 뜻이다.
데뷔 쇼케이스에서 뮤직비디오를 설명한 것도 리더가 아니라 미나미였다. 불타오르는 꽃의 향기를 찾아가고, 그 꽃을 태워 리센느의 향기를 영원히 남긴다는 설명이었다.
이때부터 미나미는 멤버 한 명이 아니라 이 팀이 어떤 팀인지를 설명하는 사람이 됐다.
데뷔했다고 해서 무언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컴백을 했는데 무대를 서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음악방송은 나가고 싶다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고 한다. 미나미는 그게 당연히 되는 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회사는 작은 자리라도 잡아 왔다. 한강에서 팬들만 보는 무대를 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직접 홍보를 했고,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서 서프라이즈 무대를 했다.
운동회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이 가장 신나 한 것은 급식이었다. 급식이 먹고 싶었는데 준다고 해서 바로 갔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미나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홍보를 위해 나가지 않은 채널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나갔고, 외국인 최초로 프로야구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복면가왕에도 혼자 나갔다.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2년이 걸렸다. 지금 화면 속의 밝음이 어디서 왔는지는 그 2년을 아는 사람만 안다.
거제 야호라는 말은 싸우다가 나왔다.
원이 채널에 미나미가 놀러 가는 편이 있었는데, 그날 미나미가 거제를 조금 무시하는 투로 굴었다고 한다. 갸루 말투로, 여기서 뭘 할 게 있느냐는 식으로. 원이 말로는 자기도 갸루여서 싸우고 있었는데 거제를 무시하는 느낌이라 못 참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다. 거제, 어? 그러면 인사해야지. 야호.
나중에 방송에서 뜻이 뭐냐고 묻자 원이는 뜻은 없고 그냥 거제 야호라고 답했다.
뜻이 없지는 않았다. 미나미가 다른 자리에서 설명한 바로는 야호는 일본어 인사말이다. 안녕과 같은 뜻이고, 일본 갸루들이 쓰는 인사가 얏호다. 미나미가 평소에 하던 인사를 원이가 거제 앞에 붙여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거제 야호는 경상남도 사투리와 일본 갸루의 인사말이 붙어서 생긴 말이다.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고 둘이 티격태격하다가 나왔다.
그 말이 지금은 대학 축제에서 관객들이 먼저 떼창으로 해준다고 한다. 거제에 다시 갔을 때는 어르신들이 먼저 야호,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고 했다.
일본에서 온 사람이 경상남도 어르신들에게 일본 인사말로 인사를 받는 그림인데, 아마 그 자리의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오래 생각했다.
원이 채널에 1일 일본어 선생님으로 불려나온 것이 시작이었다. 일본어를 가르쳐주다가 슬슬 발동이 걸렸고, 다음 영상에서는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 채널은 처음에 잘 되지 않았다. 인기가 없어서 그랬다고 본인들이 방송에서 그냥 말한다. 그래서 미나미는 캐릭터를 세 개 만들어봤다고 한다. 표준어 모드, 갸루 모드, 양키 모드.
그중 갸루 모드를 시험 삼아 한 번 해봤는데 그냥 됐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면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된다고 한다.
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갸루가 유명한 치바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갸루 세대였다.

지금도 감수를 받는다고 한다. 영상을 찍으면 어머니가 보시고 그건 아니라고 지적하신다는 것이다.
포인트는 힘을 빼는 것이라고 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되고 목소리도 중간에 흐려야 한다. 방송에서 시범을 보이면 다들 따라 하다가 실패한다. 세게 하려고 할수록 되지 않는다.
옷가게에서 일하는 갸루들은 또 톤이 따로 있고, 그 톤도 가게 스타일마다 다르다고 한다. 언니 같은 손님이 오면 이렇게, 어린 손님이 오면 저렇게, 하면서 두세 가지를 바로 시연한다.
이쯤 되면 캐릭터가 아니라 배운 것이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갸루는 지금 일본에서 한창인 유행이 아니다. 전성기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였다. 지금 도쿄 거리에서 갸루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미나미가 한국에서 불러낸 것은 본국에서는 이미 한 시절 지나간 문화다.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고 한다. 떠나온 사람의 기억 속 고향은 떠나던 날에 멈춰 있다는 말도 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믿지 않았는데 이 경우에는 조금 믿게 됐다.
갸루라는 문화의 마음은 나를 좀 봐달라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끝없이 달라지려는 문화다. 더 화려하게, 더 눈에 띄게.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간을 몇 년 버틴 사람이 하필 그 문화를 골라 그렇게 성실히 연구했다. 나는 이것이 우연 같지 않았다. 우연일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갸루식 사과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미안할 때 맹고, 하고 짧게 던지는 것이다. 한 방송에서 시범을 보이자 진행자가 이건 하나도 안 미안해 보인다고, 사과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싸움이 커질 것 같다고 다들 웃었다.
그러자 미나미가 그러면 좀 귀엽게 해달라고 했다. 귀여우면 봐준다고 하니까 바로 귀엽게 해서 넘어갔다.
그 뒤에 붙인 말이 좋았다. 진짜 미안한 상황에도 이렇게 한다고, 갸루는 그냥 문화라서 그렇다고, 예의를 갖춰야 할 때는 또 잘하는 것이 갸루라고 했다.
자기 캐릭터를 정확히 알고 쓰는 사람의 말이다. 언제 세게 나가도 되고 언제 안 되는지를 아는 것.
화장을 지우고 가발을 벗으면 갸루는 퇴근한다고 한다. 집에서는 평범하다고 했다. 부모님이 교육을 잘 시켜주셨다는 말을 하는데, 그 문장 바로 옆에 어머니도 굉장한 갸루였다는 말이 붙어 있다. 그 집의 저녁 풍경이 어땠을지는 짐작만 한다.
거제 영상에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원이는 무릎을 벌리고 앉고 미나미는 무릎을 붙이고 발끝을 벌려서 앉는다. 같은 정류장 같은 벤치인데 다리 모양만으로 출신이 갈린다.

미나미가 원이를 놀리는 방식도 일정하다. 거제에서 뭘 할 게 있느냐고 시작해서, 사투리에 갸루가 졌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고, 언덕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고, 바다에 도착해서는 이건 예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는 신발을 신은 채로 갯벌에 들어간다. 신발 벗기 싫다고 하다가 그냥 들어간다.

모교 앞에서 원이가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왜 나한테 안 오냐고 소리칠 때는 옆에서 말린다. 원니짱 가만히 있어라, 앞에서 부끄럽게 하지 말고.

세게 나가는 캐릭터는 조금만 어긋나도 밉상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밉지가 않다.
왜 그런가 보았더니 세게 나가는 상대가 늘 정해져 있다. 원이한테만 그런다. 그리고 놀리는 내용이 전부 자기가 지는 쪽이다. 거제가 별것 없다고 해놓고 거제까지 따라가고, 갸루가 사투리한테 졌다고 인정하고, 언덕 많다고 투덜대면서 끝까지 걷는다.
세게 나가면서 지는 사람이라 밉지 않은 것이다.
말리는 쪽이 갸루라는 것도 이 조합의 재미다.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저 그림이 완성된다.
6월 21일에 미나미는 갸루 캐릭터를 접겠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갸루 문화를 깊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재미만 보고 연구했으니,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터진 캐릭터를 가장 잘 나갈 때 스스로 접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도 아직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때였다.
이후 인터뷰에서는 은퇴가 아니라 가수로서의 매력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 쪽으로 정리했다. 어느 쪽이 최종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미나미가 다닌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 1학년에 입학하면 대학까지 같이 갈 수도 있는 학교였다. 미나미는 그곳을 8년 다니다가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으로 왔다.
같이 대학까지 갔을 친구들을 두고 온 셈이다.
미나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가버렸으니 저 애가 진짜 데뷔했을까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 친구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멤버들을 데리고 갔다.
하필 졸업식 전날이었다. 마지막 모임 같은 공식적인 자리라 다들 지루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른들의 말이 길어질 때 학생들이 짓는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이었다고 했다.
큰 스크린에 특별한 영상이 왔다면서 축하 영상이 떴다. 미리 찍어 간 것이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리센느의 노래가 시작됐고, 친구들은 미나미가 온 것을 몰랐으니 그때부터 소란해졌다.
무대에서 미나미는 울었다.
왜 울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친구들이 졸업하는 것을 옆에서 보니 나도 졸업하는 기분이 들었고, 이제 마음 편하게 가수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한 사람이 친구들의 졸업식 무대에 서서 자기 졸업을 대신 치렀다.
정산을 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미나미는 부모님께 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미 한 번 드린 적이 있다고 했다.
음악방송에 몇 번 나가면서 실연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3개월에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것을 모았다. 올해 초에 일주일 휴가를 받아 일본에 갔고, 마지막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봉투를 하나씩 드렸다. 20만 원씩이었다.
큰 도움이 되라고 드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진짜 내 마음이기도 하고, 나 잘하고 있어요, 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5년 동안 부모님이 그 아이에게 쓴 돈이 얼마인지 나는 모른다. 그 봉투로 갚아질 액수가 아니라는 것만 안다. 갚으려고 드린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세 살 어린 여동생 얘기를 할 때 표정이 가장 좋았다. 아직도 초등학생 같고 아기 같은 존재라고 하는데, 춤은 동생이 더 잘 춘다고 했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기에 다들 춤추는 간호사냐고 웃었다.
미나미는 웃긴 캐릭터가 잘 걸린 사람이 아니다.
이미 있던 좋은 음악과 오래 쌓인 자기 이야기를, 사람들이 다시 발견하게 만든 쪽에 가깝다.
열네 살에 혼자 바다를 건넜고, 사흘 배운 한국어로 시작했고, 1048대 1을 뚫고 결승까지 갔다가 떨어졌고, 돌아갔다가 다시 왔고, 2년 동안 나가지 않은 방송이 없었고, 그러다 티격태격하다 나온 말 한마디로 판이 뒤집혔다.
처음에 그냥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여기까지 알고 나서 그 영상을 다시 봤다. 같은 장면인데 다르게 보였다. 가벼워 보이던 것 뒤에 전혀 가볍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아서였을 것이다.
그 시간 내내 이 사람이 붙잡고 있던 첫 문장이 죄송합니다였다는 것을 나는 자주 생각한다.
이제는 다른 말을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말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