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들어간다. 한 명은 화려한 갸루 차림이고 한 명은 추리닝이다. 물장난을 치는 화면 위로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흐른다.
영화가 아니라 유튜브 예능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영상을 여러 번 봤다. 무슨 사건이 벌어져서가 아니다. 사건은 끝까지 벌어지지 않는다.
원이는 연습생 시절에 오디션을 많이 봤다고 한다. 이름을 들으면 아는 회사들에도 붙었고 캐스팅 제안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던 중에 오디션을 보러 가는 김에 이 회사도 한번 보고 가자, 하고 들른 곳이 더뮤즈였다.
그러니까 여기는 원래 목적이 아니었다. 겸사겸사였다.
연습생을 하는 사람은 꿈을 크게 가질 수밖에 없다고 원이는 말했다. 인생의 몇 년을 거기 바치는 일이니까. 유명한 선배들이 있는 회사에 가면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도 생긴다고. 그 얘기를 하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결과적으로 첫 회사가 여기가 됐고, 지금 이 팀의 리더를 하고 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불안했을 것이다.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고 딸은 아직 어렸다.
대표가 거제까지 내려왔다. 오디션을 보기도 전에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서.
그런데도 어머니는 이상하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대표가 어떻게 했느냐면, 카페를 가든 밥을 먹든 가는 곳마다 셀카를 찍어 어머니에게 보냈다고 한다. 저 이상한 사람 절대 아닙니다, 하면서.
그리고 소고기를 사줬다. 이 대목은 뒤에 한 번 더 나온다.
원이는 그룹 활동 밖에서 외부 채널에 나가며 조금씩 얼굴을 알리고 있었다. 그중 반응이 좋았던 것이 개그맨들에게 운전을 배우는 콘텐츠였다. 초보 운전자로 나왔다.
경차를 타고 고향인 거제까지 내려가 돌아다니는 편이 특히 좋았고, 거기서 거제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이 예능감을 눈여겨본 곳이 솔파 스튜디오였다. 인물의 결을 오래 바라보는 연출로 알려진 제작사다. PD가 원이를 발견하고 소속사를 직접 설득해서 채널을 만들었다고 한다.
회사가 기획한 채널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큰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외부 제작자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2026년 2월 개설. 이름은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띄어쓰기가 없다.
원이는 나중에 채널 개설 직전까지 부담이 정말 컸다고 말했다. 그래도 팀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서 했다고.
거제 편에서 원이가 한 가게에 들어가 이렇게 말한다. 이모 저 덕연이 딸인데요.
덕연은 원이 어머니의 함자다. 김덕연.
그러자 사장님이 반죽 묻은 손으로 뛰어나와 반겨주고, 통닭을 내주고, 반찬을 가져가라고 한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영상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연출할 수 없다. 돈을 아무리 들이고 뛰어난 작가가 대본을 써도 저 덕연이 딸인데요, 라는 대사는 만들 수 없다. 반죽 묻은 손으로 뛰어나오는 몸짓도 만들 수 없다.
저 한 문장에 20년이 들어 있다. 어머니의 이름이 이 동네에서 통하는 이름이라는 것, 그 이름을 대면 문이 열린다는 것, 이 사람이 이 공동체에서 자랐다는 것. 인사 하나로 전부 증명된다.
손 씻을 여유도 없이 뛰어나온 그 손이 화면에 잡히는 순간, 이것이 카메라를 위한 환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영상이 나간 뒤의 이야기가 더 좋다.
그 분식 포차 사장님이 가게를 이렇게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덕연이 딸 다녀간 집.
방송 당일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두 팀 정도가 덕연이 딸이 왔다 갔다더라, 하면서 찾아왔다고. 단골만 오던 가게에 낯선 손님이 오니 사장님이 기분이 좋아서 고맙다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거제시 홍보대사가 됐을 때는 현수막이 붙었는데, 어머니가 딸 데뷔했을 때보다 더 좋아하셨다고 한다.
딸이 뜬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뜬 것처럼 되어버렸다.
어딘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학연, 지연, 혈연, 덕연.
이 영상은 1100만 회가 넘게 재생됐다. 아이돌 콘텐츠의 조회수로는 이상한 숫자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별것이 없다.
버스를 기다리며 원이가 손을 미리 들고 흔든다. 이거 절대 문 열고 안 선다고, 기름값이 아까워서 그렇다고, 미리 표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버스에 타서는 할머니들에게 말을 건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이거 도포 가는 거 맞죠.
거제 버스는 원래 조용하지 않다고 원이는 말한다. 그리고 이유를 댄다. 거제에서는 그냥 말 걸어도 돼요, 왜냐면 저도 버스 타고 가는데 심심해요.

대각선 횡단보도가 생긴 것도 자랑한다. 자기가 학교 다닐 때는 없었다고, 서울에만 있는 줄 알았다고, 시부야 스크램블 같지 않냐고. 좀 멀리서 찍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가다가 학원 현수막에 자기 얼굴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저거 저예요, 하고 멈춰 선다. 옛날 것이라 민망해하면서도 결국 사진을 찍는다. 지나가는 강아지의 이름도 알고 있다.
바다에 가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거제 사니까 어쩔 수 없이 바다를 갑니다.

원이는 일찍 상경해 일상과 분리된 경우가 아니다. 고등학교까지 거제에서 마치고 올라왔다.
거제에는 오디션 학원이 없다고 한다. 아이돌을 하겠다는 사람 자체가 없어서다. 그래서 부산까지 학원을 오갔다. 중학교 때 무대에서 춤을 췄는데 호응이 좋아 이거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방송에서 자기를 거제 최초 아이돌이라고 소개하는데, 자랑이면서 동시에 조금 쓸쓸한 말이다. 최초라는 건 앞에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걸쭉한 사투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 거는 습관이 남아 있고, 맨손으로 개지렁이를 잡아 낚싯바늘에 꿰는 손이 남아 있다.
영상에서 자랑한 대각선 횡단보도와 편의점 위치와 버스 노선은 그 사람의 인생 자체였다. 스무 해쯤 거기 살면서 심심하면 버스를 타고 바다에 갔던 사람이 자기 동네 얘기를 한 것이다.
여기 살 만하다는 말은 살아본 사람만 할 수 있다.
영상에 극적인 사건이 없다. 낚시를 하고 통닭을 먹고 노래방에 가고 몰리도 한다.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신발이 불편하다는 미나미의 말에 원이가 신발을 벗어주고 자기가 맨발로 걷는 장면 같은 것이 쌓인다.
댓글에 영화 같다, 저예산 독립영화 같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말이 유독 많다. 시나리오도 배우도 사건도 없는 영상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사는 시대다. 컨셉이 기획되고 세계관이 설계되고,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 본다.
그 상태에서 연출할 수 없는 것이 화면에 잡히면 그냥 무장해제가 된다.
2편에서 원이는 자기가 졸업한 학교 앞으로 간다. 애들이 나를 알아볼까 궁금하다면서.
통학버스가 열몇 대씩 들어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고, 어디로 나와 어디로 도는지도 안다.
몇 퍼센트나 알아볼 것 같으냐고 묻자 60퍼센트라고 답한다. 그러고 바로 덧붙인다. 근데 막상 진짜 60퍼센트만 알아보면 약간 서운해요.
기다리는 동안 학교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신다. 원이가 인사를 하고 여기 졸업했다고 하는데 알아보지 못하신다. 여기 출신 걸그룹을 모르시냐고 묻자 이렇게 답하신다. 아니 나는 걸그룹에 관심이 없어서.

원이에게 직접 수업을 했던 선생님이었다. 원이가 큰일이네, 하고 중얼거리는 사이에 다른 선생님 두 분이 이번 주말에 결혼하신다는 소식은 알게 된다. 세상 좁다고 둘 다 놀란다.
버스 기사님들도 모르신다. 원이는 괜찮다고, 기사님들은 유튜브를 안 보시니까 그러실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니까 이제 애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드디어 학생들이 나온다. 한 무리가 야호, 하고 소리친다.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다들 멀찍이서 소리만 지르고 다가오지는 않는다.
원이가 말한다. 왜 나한테 안 와.
그러고 또 말한다. 아 나 레알 인기 많은데.
옆에서 미나미가 원니짱 가만히 있어라, 앞에서 부끄럽게 하지 말고, 하고 말리는데도 계속 손을 흔든다. 결국 몇 명이 와서 사진을 찍고, 너무 예쁘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좀 진정된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사람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창피한 걸 알면서 그냥 한다. 그리고 안 오면 왜 안 오냐고 소리 내어 말한다.
시내 코인노래방에서 원이와 미나미가 부른 노래가 아모르 파티였다.
엔딩에서 PD가 원이에게 묻는다. 다시 태어나도 거제에서 태어날 거냐고.
원이가 답한다. 원래는 아니었는데 오늘 마음이 바뀌었다고, 거제에서 다시 태어나겠다고.
그러자 PD가 알려준다. 방금 부른 아모르 파티가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니체의 말이다. 체념이 아니라, 고통이든 우연이든 초라함이든 내 삶에 일어난 모든 것을 다시 살라면 다시 살겠다는 긍정이다.
이름을 알리려 애쓰던 시간과, 아이돌 학원 하나 없어 부산까지 오가야 했던 작은 도시와, 가족을 두고 건너온 바다. 그것을 다 지나온 둘이 트로트를 부르며 웃고 있는 노래방에 저 문장이 도착했다.
각본으로 쓸 수 있는 엔딩이 아니다.
채널은 2월 개설, 5월에 구독자 10만, 6월 20일 오후에 100만을 넘었다. 개설 4개월 만이었다. 지금은 120만이 넘었고 계속 늘고 있다.
거제 편은 900만 뷰에 육박하고 평균 조회수가 400만에서 500만이다.
거제시가 멤버 전원을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다른 멤버들의 고향인 수원과 경주와 고양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이건 짚어두어야 할 것 같다.
솔파 스튜디오의 서정적인 선곡이 흥행 요인으로 꼽히고, 원이가 입은 그 추리닝조차 제작진의 의도가 담긴 선택이라고 알려져 있다.
연출이 없어서 좋았던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 들어가고 어디서 물러설지를 정확히 아는 연출이었다. 진짜가 일어나 채울 수 있게 자리를 비워둔 연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평생 연마하는 것이 그것이다. 개입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거제 편 아래에 가장 위로 올라온 말은 이것이었다. 7만 5천 명이 눌렀다고 한다.
그냥 너네가 잘됐음 한다
두 번째가 4만 7천 개짜리 마 정신차리라, 인 것이 조금 웃긴다.
내가 오래 본 것은 이것이었다.
명품자랑 돈자랑 연예인들 보다가 갯지렁이 자랑 바다자랑... 응원하고 싶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어느 순간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마케팅도 언어도 계속 도시스러운 것 위주가 됐는데, 지방에서 이렇게 자라온 사람도 꽤 있는데 다들 잊고 사는 것 같다고.
누구는 서예를 배울 때 누구는 갯지렁이 대가리를 쥐어잡고 에스자로 꿰고 있었다는 말도 있었다.
거제시가 지금까지 홍보에 쏟은 노력보다 이 영상 하나가 크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만화가 기안84가 리센느의 하루를 따라다닌 영상이 있다. 새벽부터 음악방송, 끝나자마자 강원도 행사까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내용이다.
기안84가 원이에게 묻는다. 너 언제 스타 될래, 원이야.
원이가 되려고요, 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너도 오빠처럼 훌륭한 연예인 되려면 더 열심히 해야지, 하고 덧붙인다.
원이의 대답이 바로 나온다. 아 꼰대시다.

꿈이 뭐냐고 묻자 세계 정복이라고 답한다. 인터뷰 도중에 자꾸 스케줄 때문에 불려 나가니까 기안84가 너만 앉았다 하면 일어난다고, 너 슈퍼스타인가 보다, 하고 놀린다.
이동하는 차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기안84가 무야호 오리지널을 처음 듣는다고 감격한다. 무야호가 아니라 그냥 야호라고 셋이 동시에 정정해주고, 기안84는 나 옛날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사과한다.
데뷔 초 이야기다.
컴백을 했는데 무대를 서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음악방송은 나가고 싶다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고 한다. 열심히 만든 음악과 안무를 어디서 보여줘야 할지 모르는 상태.
회사도 미안해했고, 그래서 작은 자리라도 잡아 왔다. 한강에서 팬들만 보는 무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홍보, 초등학교 운동회의 서프라이즈 무대.
원이의 명대사가 여기서 나온다. 밥은 줍니까.
운동회에 급식을 준다고 하니 바로 갔다고 한다. 급식이 먹고 싶었다고.
결혼식 스케줄도 있었는데 알고 보면 사촌 언니의 결혼식이었다. 뷔페를 먹으려고 전날부터 굶고 갔다. 그날 밥을 아주 열심히 먹었고, 하객 중 누군가가 아이돌 같은 애들이 와서 밥을 세 그릇씩 먹더라는 후기를 남겼다.
원이는 그것을 오랫동안 해명하고 싶어 했다. 사촌 언니 결혼식이었고 전날 굶고 갔다고.
축가도 부르지 않고 인사만 하고 밥만 먹고 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본인들이 가장 크게 웃었다.
첫 음악방송 리허설 날의 이야기다.
그때 처음 배운 것이 인사를 크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모든 그룹이 인사를 하니까 우리는 목이 터져라 해서 기억에 남기자, 하고 다녔다고. 안녕하세요 리센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중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한테 부탁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우리 힘으로 해줬어야 하는데 너희에게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멤버들은 못 본 척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같이 울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리허설 때 더 잘하자고 서로 다독이고, 또 목청껏 인사를 하고 다녔다.
나는 이 장면이 이 팀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미안해하는 어른이 있고, 그 미안함을 알아버린 아이들이 있고, 그래서 다 같이 한 번 더 인사하러 나가는 팀.
정산을 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원이가 이렇게 답한다.
엄마 소고기 한번 사주고 싶어.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한다. 소고기가 되게 귀한 음식이잖아요, 옛날에 엄마도 열심히 벌었을 때 사준 음식이 그거였으니까, 저도 이제 벌었을 때 딱 사주고 싶어요.
집이나 차 같은 큰 얘기가 나올 자리에서 소고기가 나왔다.
우는 것이 슬퍼서가 아니라고 본인이 바로 덧붙였다. 요즘 행복해서 웃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앞에서 대표가 어머니에게 소고기를 사줬다고 적었다. 그 소고기가 딸을 보내는 자리의 소고기였다면, 이 소고기는 딸이 처음 벌어서 사는 소고기다. 같은 음식이 두 번 나오는 이야기를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네 살 위 오빠 얘기도 나왔다. 엄마 돈 쓰지 말고 내 돈 쓰라면서 지금까지 용돈을 계속 부쳐줬다고 한다. 요즘은 그때 부쳐준 거 기억나지, 하면서 수금 얘기를 한다고.
원이 어머니와 미나미 어머니가 같이 술을 드신 적도 있다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드셨고, 원이 어머니가 아는 일본어는 카와이 하나였고, 미나미 어머니는 원이 어머니를 언니 언니 하고 부르신다고 한다.
그날 진행을 맡은 장도연도 같이 울었다.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알고리즘에 뜨는 것을 재미로도 보고 노래가 좋아서도 보는데, 각자 얘기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자꾸 보다 보니 마음이 갔다고. 그러면서 이 친구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통은 잘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잘되는 것보다 앞에 두는 마음이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어디서나 당당하게 걸으시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리센느가 인사할 때 하는 구호이자 노래 가사다. 하나 둘 셋 넷 어디서나 당당하게.
멤버들끼리는 서로 성을 붙여서 부른다고 한다. 야 김가영, 야 이예빈, 이런 식으로.
원이는 성을 떼고 원이야, 하고 부르면 싫다고 한다.
남들이 들으면 싸우는 줄 알겠다고 하자 원이가 말했다. 저는 진짜 사랑스럽게 부르는 거야.
옆에 있던 멤버가 바로 받았다. 근데 솔직하게 저는 조금 서운해.
자기는 사랑을 담아 부르는데 듣는 쪽은 서운한 그 간격이 어쩐지 이 사람을 잘 설명한다. 대표에게 발 닦고 자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촬영장에 자꾸 오시니 부담스러워서 카메라에 몰래 말했다고 한다.
멤버들은 원이를 몸통이라고 부르고 자기들끼리는 원이의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자처한다.
이유가 된 장면 하나가 있다.
원이의 생일에 미나미와 함께 나선 쇼핑 브이로그였다. 회사에서 받은 것은 10만 원 한도의 법인카드였다. 성수동을 돌던 미나미가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했다. 가격을 확인하고는 포기했다.
잠시 후 미나미는 그 가방을 사고 있었다.
제가 허락할게요, 원이가 말했다.
한도는 10만 원이었지만 원이에게는 그 선을 넘길 재량이 있었다. 대표가 미리 준 권한이라고 한다. 애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네 선에서 사줘라, 하고.
행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원이는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안녕하세요, 저 아세요, 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리센느 아세요.
라디오에 나가기 전에는 진행자에게 장난으로 부탁을 하나 남겼다고 한다. 나중에 그 말이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하루를 저에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멜론 스밍이 뭔지도 몰랐다는 한 아저씨 팬이 이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적었다.
자기소개를 하는 방식과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 둘 다 자신이 아니라 팀을 앞에 세운다. 리더라는 자리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런 사람이라 리더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리센느는 데뷔 순간부터 자기가 누구인지 남이 대신 설명해주지 않는 팀이었다. 리더인 원이가 누구보다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사람들이 원이를 보며 이 팀을 응원하는 이유는 원이가 완성된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오히려 반대다.
잘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탄 것이 아니라, 안 될 수도 있었던 팀을 끝까지 놓지 않고 끌고 온 사람처럼 보이니까.
노래 하나가 터진다고 팬이 생기지는 않는다. 친근하게 다가가 입구가 되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원이가 그것을 했다.
그리고 그 입구로 들어와 보니 안에 있던 것이 소고기 한 끼였다.
첫 정산을 꼭 받아서 어머니와 좋은 데 가서 실컷 드셨으면 좋겠다. 그날은 아마 아무도 촬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편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