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녀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들어갑니다. 한 명은 화려한 갸루 차림이고 한 명은 추리닝이에요. 물장난 치는 그 위로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흐릅니다.
이거 영화가 아니라 유튜브 예능 한 장면입니다.
원이는 그룹 활동 밖에서 외부 채널에 나가면서 조금씩 얼굴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반응이 좋았던 게 개그맨 삼촌들한테 운전을 배우는 콘텐츠였어요. 초보 운전자로 나와서요.
경차 타고 고향인 거제까지 내려가서 돌아다니는 에피소드가 특히 좋았고, 여기서 거제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예능감을 눈여겨본 사람이 솔파 스튜디오였어요. ODG로 유명한, 인물의 결을 오래 바라보는 연출로 정평이 난 제작사입니다. 윤성원 PD가 원이를 발견하고 소속사를 직접 설득해서 채널을 만들었대요.
이게 회사가 기획한 채널이 아니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중소였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 제작자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예요. 대형이었으면 이미지 관리 이유로 막혔을 가능성이 높죠.
2026년 2월 개설. 이름은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원이는 나중에 채널 개설 직전까지 부담이 정말 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리센느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서 했다고요.
거제 영상에서 원이가 한 가게에 들어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모 저 덕연이 딸인데요
덕연이는 원이 어머니 함자예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반죽 묻은 손으로 뛰어나와서 반겨주고 통닭 내주고 반찬 가져가라고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 영상의 심장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연출할 수가 없거든요. 방송사에서 아무리 돈을 들이고 뛰어난 작가가 대본을 써도 "저 덕연이 딸인데요"라는 대사는 못 만듭니다. 반죽 묻은 손으로 뛰어나오는 몸짓도 못 만들고요.
저 한 문장에 20년이 압축돼 있어요. 어머니 이름이 이 동네에서 통용되는 화폐라는 것, 그 이름을 대면 문이 열린다는 것, 이 사람이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랐다는 것. 인사 하나로 다 증명되잖아요.
손 씻을 여유도 없이 뛰어나온 그 손이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이게 카메라를 위한 환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원이는 다른 연습생들처럼 일찍 상경해서 일상이랑 분리된 케이스가 아니에요. 고등학교까지 거제에서 마치고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스스럼없이 말 거는 습관이 남아 있고, 맨손으로 개지렁이 잡아서 낚시바늘에 꿰는 손이 남아 있어요.
버스에서 옆 사람한테 말 거는 장면 보면서 아 이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아이돌이 된 소녀가 사실은 거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간 겁니다.
영상에 극적인 사건이 없어요. 낚시하고 통닭 먹고 노래방 가고 몰리도 하고. 그게 전부입니다.
근데 신발이 불편하다는 미나미 말에 원이가 신발을 벗어주고 자기가 맨발로 걷는 장면 같은 게 쌓여요.
댓글에 "영화 같다", "저예산 독립영화 같다", "청춘영화 한 장면 같다"가 유독 많은데, 시나리오도 배우도 사건도 없는 영상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사는 시대잖아요. 아이돌 산업은 그 정점에 있고요. 컨셉이 기획되고 세계관이 설계되고 리얼리티 예능조차 대본 위에서 굴러가고,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 소비합니다.
그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연출할 수 없는 게 화면에 잡히면 그냥 무장해제가 되는 거예요.
이건 진짜 각본으로 못 씁니다.
시내 코인노래방에서 원이랑 미나미가 부른 노래가 아모르 파티였어요.
그리고 엔딩에서 PD가 원이한테 묻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거제에서 태어날 거냐고.
원이가 이렇게 답해요.
원래는 아니었는데 오늘 마음이 바뀌었다. 거제에서 다시 태어나겠다.
그러니까 PD가 알려줍니다. 방금 부른 아모르 파티가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니체가 한 말이죠. 체념이 아니라, 고통이든 우연이든 초라함이든 내 삶에 일어난 모든 걸 다시 살라면 다시 살겠다는 긍정입니다.
인기 없는 중소 아이돌로 보낸 시간, 고향에선 배 타고 다니냐는 농담을 듣던 작은 도시, 가족을 두고 건너온 바다. 그걸 다 짊어진 둘이 트로트를 부르면서 웃고 있는 노래방에 저 문장이 도착한 거예요.
어떤 각본가가 이런 엔딩을 씁니까 ㅠㅠ
채널은 2월 개설, 5월에 구독자 10만, 6월 20일 오후에 100만을 넘었습니다. 개설 4개월 만이에요. 지금은 120만이 넘었고 계속 늘고 있습니다.
거제 영상은 900만 뷰에 육박하고 평균 조회수가 400만에서 500만입니다.
거제시가 멤버 전원을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다른 멤버들 고향인 수원 경주 고양까지 줄줄이 이어졌어요.
이건 짚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솔파 스튜디오의 서정적인 음악 선곡이 흥행 요인으로 꼽히고, 원이가 입은 그 추리닝조차 제작진의 의도가 담긴 선택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까 연출이 없어서 좋았던 게 아니라, 어디까지 들어가고 어디서 물러설지를 정확히 아는 연출이었던 겁니다. 진짜가 일어나서 채울 수 있게 자리를 비워둔 연출이요.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평생 연마하는 게 그거잖아요. 개입하지 않고 기다리는 거.
리센느는 데뷔 순간부터 자기가 누구인지 남이 대신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팀이었습니다. 리더인 원이가 누구보다 절박할 수밖에 없었고요.
지금 사람들이 원이를 보면서 리센느를 응원하는 이유는 원이가 이미 완성된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히려 반대죠.
대형을 등에 업고 잘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탄 게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회사에서 안 될 수도 있었던 팀을 끝까지 안 놓고 끌고 온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원이 한 명이 대중이랑 리센느 사이에 다리가 돼준 셈입니다.
노래 하나 터진다고 찐팬이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예능으로 친근하게 다가가서 입구가 되어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원이가 그걸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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