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를 설명하려면 이 장면부터 꺼내는 게 빠르다.
한 래퍼가 이런 가사를 썼다.
미안하지만 네가 혼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생각 조금은 하지 않을까.
이 가사는 빈축을 샀다. 꼴값 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예능에서 그 얘기가 나왔다. 이걸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웃자고 던진 질문이었다.
궤도는 웃지 않았다. 이거 한번 풀어볼까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가 꺼낸 건 수학자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보통 해결하지 못한 걸 싫어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집단이 하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난제가 있었다. 앤드루 와일즈가 사백 년 만에 그걸 증명했다. 수학자들이 좋아했을 것 같지만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즐거워하면서 풀고 있었는데 네가 해결해버리면 나는 이제 뭘 하느냐는 것이다. 가장 애정하던 걸 뺏긴 셈이니까.
그래서 하버드에 수학자들이 모여서 앞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정해보자고 했고, 거기에 앤드루 와일즈도 참여했다. 그렇게 일곱 개가 뽑혔다. 리만 가설 같은 것들. 밀레니엄 7대 난제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말하고 그가 다시 가사를 짚었다.
이 시는 쓰는 사람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제의 관점이라는 것.
내가 리만 가설인데, 미안하지만 수학자들 너희가 혼자 해결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희가 리만 가설 생각을 좀 하지 않을까.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가사를 쓴 본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난제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사랑은 풀지 못하는 숙제라고.

궤도의 해석이 맞았던 것이다.
이걸 보고 나면 그가 왜 안 웃었는지 알게 된다. 아무도 그 가사를 안 읽고 있었다. 다들 꼴값이라고 하고 지나갔는데,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 문장을 진짜로 읽은 사람이 옆에 앉은 과학 커뮤니케이터였다.
그가 이런 말도 했다. 진짜 명작은 내가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법이라고.
왜 이런 걸 굳이 분석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과학을 좋아하게 만들려는 방식이라고.
그러면서 든 예가 김치 싸대기였다.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뉴턴의 운동 법칙이 있다. 그냥 말하면 재미가 없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김치 싸대기를 때리는 장면을 보면 사람들이 전부 맞은 사람만 애처롭게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치도 맞았어요, 하고 그가 말했다.
때리는 순간 볼도 김치에 맞았지만 김치도 볼에 맞은 거니까, 자기 입장에서는 김치도 애처롭게 봐야 한다고. 그게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농담처럼 한 말인데 나는 이 사람의 세계관이 여기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보는 세상에는 편들어주지 않아도 되는 쪽이 없다. 귀신한테도 사정이 있고 김치한테도 사정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태양에 관한 관용구도 두 개 뜯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이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장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개념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태양 입장에서는 내일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태양은 우주적 관점에서 늘 그냥 거기 있고, 지구가 옆에서 혼자 돌면서 쇼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그러면 태양은 이걸 어떻게 볼까요, 하고 그가 말했다. 지들끼리 혼자 돌아놓고선 좀 진지하네 얘들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는 말도 짚었다. 잘 만든 문장이긴 한데 정확히 하자면 하늘 아래에는 한 개의 태양도 없다는 것이다. 지표면에서 100킬로미터까지를 카르만 라인이라고 하고 그 안쪽을 하늘로 치는데, 태양은 그 바깥에 있으니까.
그래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당연히 없다고, 하늘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고쳐 말했다.
관용구 하나를 이렇게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귀신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됐다.
지박령이라는 게 있다. 병원이나 집 같은 특정 위치에 고정돼서 공격하는 존재. 궤도는 그게 가능한지를 따졌다.
귀신은 날아다니니까 중력의 영향을 안 받는다고 가정해보자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지구는 시속 1,300킬로미터로 자전한다. 그러면 한 시간 뒤에는 1,300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에 가 있어야 한다. 자전만 하는 것도 아니고 공전도 한다. 태양계 전체가 은하를 돌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박령 입장에서는 오늘 이 병원에서 말뚝을 박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혼자 우주에 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사실 귀신을 만났을 때는 무서울 게 전혀 없는 거야.
자기 몸을 병원이나 학교나 집에 고정하는 데 엄청난 힘을 쓸 테니 우리를 공격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귀신 쪽에서 나는 중력 영향 받는데, 라고 나오면 더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때리면 맞는다는 뜻이니 피지컬 싸움이고, 이길 만하면 붙고 아니면 빠지면 된다고.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본인의 몸을 고정하셨습니까. 이 문장은 밈이 되었다. 지금도 귀신 영상만 올라오면 밑에 이 말이 달린다.
가위눌림 이야기도 같은 회차에 나왔다. 가위눌림의 반대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그가 물었고, 아무도 답을 못 했고, 그가 몽유병이라고 했다.
몽유병은 뇌가 잠들었는데 몸이 깬 것이고, 가위눌림은 몸이 잠들었는데 뇌가 깬 것이다. 뇌가 일어나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안 일어난다. 뇌 입장에서는 굉장히 이상한 현상이니까 그걸 해석하려고 한다. 무언가 외력이 나를 잡고 있는 게 아닐까. 거기서 귀신이나 괴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건드리는 순간 가위가 풀린다고, 몸이 깼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마등 이야기도 했다. 죽음의 순간에 뇌가 해야 하는 일은 딱 하나, 살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으니까 자기 삶의 모든 기록 안에서 이 난관을 넘길 방법을 뒤진다는 것이다.
주마등이 스치는 게 내 뇌가 살려고 발버둥치는 거야.
이런 이야기는 대개 웃기고 끝난다. 그런데 그 밑에 이런 말이 달렸다.
원래 귀신 엄청 무서워하고 가위 잘 눌리는 사람이었는데 저 말씀 듣고 무서운 게 팍 식어서 그 뒤로 가위 한 번도 안 눌리고 공포영화 봐도 무덤덤한 사람이 됐다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요약했다. 지평좌표계 발언으로 대한민국 국민 평균 공포저항력 향상에 이바지함.
어릴 때 가위에 눌려본 사람은 안다. 그게 무서운 이유는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설명이 붙는 순간 그건 그냥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된다.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 누군가의 이십 년짜리 공포를 걷어갔다. 그가 그 질문을 농담으로 받았으면 그냥 웃긴 장면 하나로 끝났을 것이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한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러시아의 화성 탐사선 포보스 그룬트라는 게 있었다. 화성의 위성 포보스에 착륙해서 땅을 긁어 지구로 돌아오는 임무였다. 그런데 발사하자마자 화성으로 안 가고 지구로 돌아왔다. 통제 불능이었다.
문제는 그게 폭발물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TNT 수천 톤에 해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당시 연구원이던 그는 추락 궤도를 계산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체는 추락 30분 전에 제주도 상공을 지나갔다. 제주도에서 육안으로도 보였다고 한다.
30분이었다.
나중에 예능에서 그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진행자 둘 다 처음 듣는다고 했다. 왜 이걸 우리가 몰랐지, 하고 한 사람이 물었다.
그가 이렇게 답했다. 근데 아무도 몰라.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우주 물체 추락에 대해 나라가 관심을 갖고 예산과 인력을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 느낀 게 자기가 이걸 연결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였다고.
학자와 대중 사이에 아무도 서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에 서기로 한 게 그때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의 영상 밑에 이렇게 적었다. 남들이 모르게 위기를 넘겨준 히어로이기도 하고.
그는 자기 일을 설명할 때 과학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과학 때문에 주눅 들었던 기억 같은 것. 자기는 그런 사람들을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이고 문을 여는 건 그 사람들 몫이라고 한다.
앞의 가사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이 악플을 달려고 궤도를 검색한다고. 그리고 거기서 과학을 만난다고.
인스타그램 DM에도 답을 잘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나쁜 말을 보내온 쪽에도 최소 한 번은 답을 한다고 했다. 친절한 답을 받은 사람이 마음을 돌려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방송이 크게 나간 직후에는 하루에 천 통쯤 왔고 요즘도 이삼백 통은 온다는데, 그걸 정말 다 읽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고 불친절한 답변만 있다는 말을 그는 자주 한다. 뒤에 대학원생은 이런 질문 하면 안 된다는 농담을 꼭 붙이지만.
이 사람이 제일 자주 꺼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창백한 푸른 점이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 킬로미터 밖에서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찍은 사진. 다들 그 사진 얘기만 하는데 궤도는 그 사진이 찍히기까지의 실랑이를 이야기한다.
당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보이저는 너무 소중한 인공물인데 카메라를 태양 쪽으로 돌렸다가 강한 빛이 들어오면 센서가 타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카메라를 싣는 것부터가 돈 문제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거기서 칼 세이건이 한 말을 그는 이렇게 옮긴다.
납세자들의 돈으로 만든 것이다. 납세자한테 사진 한 장 안 보여주는 게 말이 되냐.
그 말 때문에 카메라가 실렸고 결국 그 사진이 찍혔다. 이 대목에서 궤도가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과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도 과학에 그렇게 돈을 쓰는 걸 국민들이 납득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자기가 죽고 나서 오십 년, 육십 년 뒤에는 그게 너무 당연한 일이 되도록.
그 사진 앞에서 칼 세이건이 쓴 문장을 그는 외우다시피 한다.
우리의 고향인 저 점에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영웅과 겁쟁이, 왕과 농부, 선생님, 부패한 정치가와 지도자,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고작 먼지 한 톨만 한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있다.

*가운데 붉은 띠 위의 흰 점 하나가 지구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너무 작은 무대라고.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 때문에 너무 많은 싸움과 증오가 있었다고. 그러니 겸손해야 하고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궤도는 여기에 자기 말을 붙인다. 태양계 자체가 우리 은하에서 깡촌이라는 것이다. 은하 중심에 있었으면 다 타 죽었을 텐데 깡촌이라 살아 있는 거라고. 우리 은하의 시골에 있는 시골 태양계, 그중에서도 깡촌인 지구.
우리는 다 태양계 촌놈들이라고 그는 말했다.
강남에 산다, 뉴욕에 산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결국 먼지 위에 사는 거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하찮은 게 아니라,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겸손해야 하는 거라고.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이런 대목으로 넘어간 적이 있다.
우주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 존재가 너무 미미하게 느껴져서 괴롭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그가 답했다. 지금 현재 우리가 보잘것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오직 인간밖에 없다고. 그리고 그걸 알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에 대한 배려와 애정과 사랑이 생기는 거라고.
그러고는 자기가 존경하는 천문학자가 늘 하던 말이라며 이걸 옮겼다.
너무나도 크고 광활한 이 우주에서 우리는 너무 외롭다. 그 외로움을 버틸 유일한 방법은 사랑뿐이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못 버틴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그 사진을 보고 나면 누구에게도 무례하게 굴 수 없다고. 저 한 도트 위에서는 어떤 철학도 정치 성향도, 남자 여자도, 부자 가난도 의미가 없고 그냥 똑같은 생명체라고.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과학 이야기를 하다가 사람의 마음으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끝난다.
내가 이 게시판에 이 사람을 넣은 이유도 사실 여기다. 과학을 잘 설명해서가 아니라, 과학 얘기를 하다가 서로에게 무례하지 말자는 데로 가는 사람이라서.
한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요즘 물 들어와서 노 젓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보통은 겸손한 농담으로 받는 자리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는 물이 아예 없을 때도 계속 젓고 있었다고. 과학 이야기를 한 지 십삼사 년이 됐고, 400석짜리 관객석에 두 명 앉아 계신 데서 강연한 적도 있다고. 이 물이 언젠가는 빠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때도 자기는 땅을 긁고 있을 거라고.
젓는 게 중요하지 앞으로 나가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400석에 두 명. 그 장면을 오래 생각했다.
여기서도 그는 웃지 않았다.
왜 웃어야 할 자리에서 안 웃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정리된다.
그는 상대가 던진 말을 농담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허튼 질문이든 시비든 밈이든 일단 질문으로 받는다. 그래서 웃기려고 만든 판이 이상하게 안 웃겨지고, 대신 놀림받던 가사가 사랑에 대한 시가 되고, 누군가는 이십 년 묵은 무서움을 잃는다.
본인은 자기가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순전히 자기 욕망에 충실할 뿐인데 그 이기심의 결과가 조금은 사회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의 문장이었다.
*이 글은 계속 고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