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슈카가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라이브를 켰다.
첫 마디는 이거였다.
피곤함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해명 방송의 첫 장표가 사과였다*
그날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일 년 전 영상에서 한 말이 잘려 나가 조롱으로 둔갑했고, 그게 커뮤니티를 돌다가 신문과 TV에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억울한 쪽은 그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송을 여는 문장이 사과였다. 자기가 해명하는 것조차 보는 사람에게 피곤한 일이라서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어지간하면 커뮤니티에 글을 안 쓴다고. 좋은 내용도 있지만 안 좋은 내용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피곤하고, 영상 봐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거기에 글까지 얹기가 싫어서 안 쓴다고. 그런데 이번에 또 남겼다고.
죄송합니다, 를 한 번 더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짧게 적는다.
2025년 4월, 코스피가 2500이던 시절에 그는 대선 테마주를 다루면서 코스피 5000 공약 이야기를 했다. 선거 기간에는 주식시장이 좋으니 지금 사도 된다는 취지의 방송이었다. 그 방송의 몇 초가 잘려서 일 년 뒤에 돌았다. 슈카가 코스피 5000을 비웃었다, 굴욕을 당했다, 세 시간 조롱했다.
라이브에서 그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코스피 5000은 대단한 일이고 백 번 칭찬해도 아깝지 않은 업적이라고. 우리나라가 처음 간 거니까 앞으로 더 높게 갔으면 좋겠다고.
자기를 조롱꾼으로 만든 그 숫자를 칭찬하는 데 문장을 썼다.
억울한 심정도 숨기지는 않았다. 이런 걸 겪어보면 밥이 안 넘어가고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십 년 동안 국장을 어떻게 올릴까 하는 얘기를 제일 많이 해온 사람인데 정반대로 알려졌다고. 깊은 회의감과 무력감이 들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그러고는 바로 이렇게 붙였다. 근데 해야죠, 돈 버니까 해야 되는데.
그날 방송에서 그는 이번 일만 얘기하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씩 꺼냈다.
2023년에 어떤 이차전지 종목이 크게 올랐을 때 그는 영상을 하나 올렸다. 좋은 기업이고 실적이 오르고 있고 시장 비전도 훌륭하다고, 다만 단기 급등이 심하니 변동폭을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안 내리고 그대로 두고 있으니 가서 보면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 뒤에 그가 들은 말은 이랬다. 슈카는 이차전지의 적이다. 한국 이차전지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중국 이차전지를 응원하는 사람이다.
이건 좋게 옮긴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는 쌍욕이었다고. 자기가 평생 쌍욕을 들어본 게 트레이딩하다 욕먹은 이후로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영상이 수십 개 올라왔고, 그걸 본 사람들이 몰려와서 또 욕을 했다고. 밤길 조심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설명해보려고 했는데 전혀 안 듣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짚었다. 슈카라는 사람이 뭘 얘기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자기 이익이 중요한 거라고. 그래서 대화가 안 된다고.
그다음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뒤로는 조심하라는 영상을 못 올리겠더라고 그는 말했다.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피해야 한다,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그 뒤로 잘 안 한다고 했다. 무슨 얘기를 해도 공격이 들어오니까.
그리고 한마디를 붙였다. 엄청난 피해자가 나왔죠.
이 대목을 나는 몇 번 다시 봤다. 남을 안 깎는 사람이 공격받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런 사람은 반격하지 않는다. 대신 입을 닫는다. 그리고 그 침묵의 값은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치른다.
같은 방송에서 그는 자기 실수도 몇 개 꺼냈다.
한번은 생방송 자료에 특정 사이트 로고가 들어간 적이 있다.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이미지였는데 거기에 그게 박혀 있었다. 자기는 그 사이트에 평생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지금 확대해서 보니까 보이는 거지 원래 크기로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자료를 만든 직원이 신문 기사니까 믿고 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분이 회사를 못 다니고 쉰다고. 다시 올지 모르겠다고. 그분도 실수예요, 실수. 당연히 실수죠.
자기 방송에서 벌어진 사고인데 그 사고를 낸 직원을 두 번 감쌌다. 심지어 그 기사를 쓴 사람까지 낚인 거라고 편을 들었다.
지도에 일본해라고 적힌 걸 그대로 쓴 일도 있었다. 형광색 지도가 예뻐서 골랐다가 그렇게 됐다고 한다. 이건 자기 실수가 맞다고 그는 인정했다. 그러고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돕는 데 삼천만 원씩 두 번, 육천만 원을 기부했다.
자기가 착한 놈이어서 기부한 게 아니라 실수는 실수니까 그랬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또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너는 왜 하필 거기다 기부하냐, 더 좋은 데도 있는데.
그날 사람들은 고소하라고 했다. 밑에 달린 400개 중 열 개 넘게 그런 말이 있었고, 기자를 향한 욕설도 적지 않았다. 매번 좋게 넘어가주니까 저러는 거라는 말이 공감을 많이 받았다.
그는 방송 후반에 그 요구에 답했다.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조언이 많았는데 자기한테는 좌우명이 하나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좌우명이라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함께 살아가는데 남한테 피해를 주지만 않아도 칠팔십 점은 받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옛날에 채널 소개란에도 써놨었다면서 이렇게 이었다. 남을 비난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말고, 내 얘기만 하는 방송을 하자.
물론 그렇게 하면 어그로도 더 끌고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안다고도 했다. 다만 자기는 그 사람을 다 모르지 않느냐고, 친구나 가족이면 몰라도 일면일 수 있다고, 그건 기자들이나 대형 언론이 탐사 보도를 해줘야 얘기할 수 있는 거지 방구석에 앉아 있는 유튜버 한 명으로는 쉽지 않다고 했다.
대응이라는 것도 비슷하다고 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그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자기 생각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 한 줄을 붙였다.
그냥 내가 참으면 되지 뭐.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방송 끝에 그가 시청자들한테 부탁을 하나 했다.
자기는 낙천적인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고, 회의감이나 무력감이 드는 사람이 많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 여러분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몰려가서 죽일 듯이 공격하지는 말아달라고.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표현의 자유고 그게 민주주의고 그게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 아니냐고. 반대편이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를 만들면 여러분도 화나지 않느냐고.
괴물과 싸울 때 내가 괴물이 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를 두들겨 팬 사람들 얘기를 하다가 결론이 상대를 팼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아무도 안 팼으면 좋겠다로 끝났다.
그다음이 좀 이상했다.
그는 갑자기 직원들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직원이 꽤 되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사업에 도움 되는 얘기만 해야 되는데 항상 뽑아놓고 문제를 일으켜서 미안하다고.
여러분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다시 한번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 보고 계실 텐데 미안하다고. 저놈 또 저러고 있네, 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을 텐데 미안하다고.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미안해, 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한 시간짜리 방송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이 죄송하다와 미안하다였다.
그리고 그 방송은 이렇게 끝난다.
내일은 잠수를 타야겠다고 그가 말했다. 해외여행이라도 가야겠다고. 또 얼마나 욕을 먹을지 상상이 안 된다면서 비행기 표라도 알아봐야겠다고 하다가, 이런 얘기 하면 안 되지, 하고 스스로 말을 거뒀다.
날씨 풀리면 낚시나 다닐까,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될까, 그런 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중학교 때 이야기를 꺼냈다.
삼십오 년 전 학기 초에 체육 선생님이 친구한테 요즘 왜 안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친구가 뭐라고 답했느냐면, 선생님 첫 끗발이 개 끗발이잖아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그 말을 듣더니 저벅저벅 걸어와서 그 친구를 때렸다고 한다. 옛날엔 그런 게 없었다고, 학교 폭력 같은 게 잘 없을 때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 친구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깐족깐족대는 애였는데 자기랑 비슷했다고. 자기 별명이 미스터 깐족이라고.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하고 그가 웃었다.
걔도 깐족대다 맞았는데 저도 깐족대다 맞는 거죠.
마지막 문장은 이거였다. 아유 이놈의 이거 입이 문제예요.
한 시간 동안 억울한 일을 설명한 사람이 자기가 맞은 이유를 중학교 친구 이야기로 만들어서 끝냈다.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견디는지 그 대목에서 좀 알 것 같았다.
그날 밤 그 밑에는 힘내라는 말이 118개 있었다. 400개 중에 그랬다.
해외에서 식당을 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적었다. 손님 100명 중 만족한 99명은 말없이 다시 와서 또 먹어주고 꼭 1명이 컴플레인하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만든다고. 자기처럼 마음으로 응원하는 99명을 생각하며 가시라고.
십 년을 봤다는 사람은 이렇게 썼다. 누구보다도 남 비난 안 하고 희망찬 이야기 하시는 분인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그리고 이런 것도 있었다. 긴 시간 봐온 시청자로서 이만큼 목소리가 떨리고 눈이 붉은 것을 처음 보고 너무 놀라서 댓글을 남긴다고. 이 사람이 평소에 어떤 톤으로 방송하는지 아는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제일 위에 올라온 건 이 한 줄이었다. 라이브로 항변한 거엔 기사 한 줄 없는 게 대박이다.
잘린 말은 기사가 되고 해명은 기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 라이브를 다룬 기사를 나는 찾지 못했다.
이건 그가 직접 말한 걸 못 찾아서 알려진 사실만 적는다.
2021년에 그는 삼프로TV를 운영하는 회사의 공동대표로 갔다. 자기 회사 지분 100%와 그쪽 지분을 맞바꾸고 스톡옵션까지 더해 13%를 갖는 구조였다.
일 년 남짓 만에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계약을 처음 상태로 되돌렸다. 그 사이 그쪽 지분 가치가 크게 올라서 자기 회사 100%에 해당하는 지분은 0.3%도 안 되게 줄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원래대로 돌려받는 쪽이 손해를 보는 계산이었다. 그는 남은 지분을 전부 무상으로 넘기고 자기가 들고 갔던 것만 챙겨 나왔다.
수백억이 걸린 선택이었다는 이야기가 그때 많이 돌았다. 실제 금액이 얼마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이 일을 여기 적어두는 이유는 액수 때문이 아니다. 이 사람이 뭔가를 정리할 때 늘 같은 방식을 쓴다는 게 보여서다. 억울하면 참고, 실수하면 자기 돈을 내고, 헤어질 때는 자기 몫만 들고 나온다. 그러고는 그 얘기를 방송에서 하지 않는다.
출산율 이야기를 하도 자주 해서 또산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국민연금도 그렇다. 두 채널에서 국민연금만 다룬 영상이 열두 개다.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을 다룬 회차에서 그는 이례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짜 개인적으로는 좀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한 거고 미안한 건 미안한 거죠. 뭐, 별 말이 있겠습니까. 힘내라는 말밖에 못하겠고 미안한 거고.
경제 유튜버가 시청자한테 미안하다고 할 이유는 사실 없다. 제도를 만든 사람도 아니고 숫자를 만든 사람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저출산 다큐를 찍을 때 한일부부를 인터뷰하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도 했다. 왜 나는 계속 돈 이야기만 하고 있었을까.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는데.
경제를 잘 설명해서가 아니다.
대학신문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 때문이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려면 비난과 비판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미처 알지 못하는 내막이 있을 수 있기에 함부로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
조회수가 나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그 방법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남을 깎는 일에는 언제나 즉각적인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에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약속이다.
그리고 2026년 1월에 그 약속이 시험당했을 때, 그는 지켰다. 그날 그가 화를 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짜깁기라는 방식이었다.
같은 방송에서 그는 자기 인생 계획도 슬쩍 흘렸다. 전업으로 나선 게 2019년이고 그때 목표를 십 년으로 잡았다고. 이십 대 십 년은 게임을 했고, 삼십 대 십 년은 회사 다니면서 트레이딩을 했고, 사십 대 십 년은 유튜브를 열심히 하고, 오십 대 십 년은 놀러 다니겠다고.
이 계획대로면 2029년에 그는 낚시를 하러 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일요일 저녁 여덟 시 이십 분에 방송을 켤 것이다. 예정 시간을 넘기면 채팅창은 야근하라고 환호할 것이고, 그는 또 형님들은 아시겠지만 나도 잘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이 게시판의 알상무 편과 같이 읽으면 좋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같은 증권사, 같은 운용사를 거쳐 결국 같은 회사에서 사장과 직원으로 다시 만났다.
*이 글은 계속 고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