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 연습실 바닥에 다섯 명쯤이 둘러앉아 있었다.
배우 한 사람이 새내기로 대학을 다녀보는 자리였고, 그 옆에 만화가와 가수가 손님으로 앉아 있었다. 마주 본 쪽은 진짜 새내기였다.
몇 년생이냐고 누가 물었다.
06년생이요, 하고 학생이 답했다.
가수가 곧바로 받았다. 아까 태어났네.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 말은 그 자리에서 제일 재미있는 말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누군가 학생의 부모님 나이를 물었다. 아마 우리랑 비슷할 수도 있겠다고, 손님으로 온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맞아요, 70년대생이요.
그다음에 나온 질문이 결정적이었다. 시크릿 가든 할 때 몇 살이었느냐고.
여섯 살이요.
그 드라마는 열대여섯 해 전 겨울에 방송됐다. 그때 여섯 살이던 아이가 지금 스무 살이 되어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세어보면 당연한 계산인데, 그 계산을 소리 내서 하고 나면 방 안 공기가 한쪽으로 기운다.
기울 곳은 하나뿐이다.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이 뭘 하는지 나는 대충 안다. 놀림이 오기 전에 자기를 먼저 놀린다. 아이고 늙었죠 뭐, 하고 웃으면 그게 제일 안전하다. 상대가 할 말을 내가 먼저 해버리면 아무도 나를 때릴 수 없다.
배우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만화가는 그 자리에서 혼자 자세가 달랐다. 다들 무릎을 세우거나 바닥에 앉아 있는데 그는 몸을 뒤로 눕히다시피 하고 천장 쪽을 보고 있었다.
그 자세로 그가 말했다. 누나는 청춘을 두 번 사는 거라고.
그러고는 한마디를 붙였다. 그런 기회가 많이 없다고. 보통 사람들한테는 잘 오지 않는 일이라고.
배우가 너무 멋진 말이라고 했다. 학생이 되물었다. 청춘을 두 번 사는 거예요?

나는 이 장면을 몇 번 다시 봤는데, 볼 때마다 걸리는 건 문장이 아니었다.
그 문장이 아무도 안 깎고 만들어졌다는 게 걸렸다.
보통 이런 위로는 반대편을 깎아서 만든다. 요즘 애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든가, 이십 대가 뭐가 좋냐든가, 나이를 먹어야 사람이 깊어진다든가. 그렇게 말하면 위로받는 쪽은 잠깐 편해지지만 그 방에 앉아 있던 어린 사람이 대신 값을 치른다.
그는 학생을 건드리지 않았다. 학생이 어리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여섯 살이 스무 살이 됐다는 계산을 뒤집지도 않았다.
같은 숫자를 그냥 다르게 셌을 뿐이다.
이 사람이 2019년 겨울부터 일 년쯤 연재한 만화가 하나 있다. 제목이 회춘이다.
줄거리를 한 줄로 적으면 이렇게 된다. 두 번의 청춘이 오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그 세계에서는 사람이 어느 나이가 되면 늙는 대신 어려진다. 살수록 젊어지고 마지막에는 아이가 되어 생을 마친다. 설정만 들으면 웃긴 만화 같은데 읽어보면 웃기지 않다. 중국어권에 번역돼 나갔을 때 붙은 제목은 제2의 청춘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그가 한 말은 즉석에서 지어낸 문장이 아니었다. 그 자리보다 육 년 앞서 그는 이미 그 세계를 그려놓고 있었다.
이 만화에서 제일 자주 이야기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작중 인물을 두고 독자가 이런 말을 붙였다. 평생 고생만 해서 폭삭 늙었잖아, 가 아니라 고생만 해서 폭삭 어려졌잖아, 라고. 우리가 사는 쪽은 늙음을 고생의 흔적으로 읽는데 그 만화의 세계는 어려짐을 고생의 흔적으로 읽는다.
같은 얼굴을 보고 다른 걸 세는 것이다.
주인공 곁에 중년의 아내가 나온다. 그 사람은 회춘한 뒤에 이혼을 선언하고, 첫사랑이던 교생을 찾아가고,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삼십 년 만에 대학에 복학한다.
두 번째 청춘이 온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그 만화를 그린 사람이 육 년 뒤에 대학 연습실 바닥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새내기를 해보겠다고 온 마흔 몇 살의 배우가 있었다. 나는 이 우연이 좀 이상했다.
배우가 그 자리에 있던 이유도 생각해보면 그렇다. 요즘 스무 살들이 뭘 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직접 겪어보겠다고 학교에 등록한 것이었다. 구경하러 간 게 아니라 학번을 받고 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 그 방에는 두 번째 청춘을 그린 사람과 두 번째 청춘을 실행 중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던 셈이다. 정작 두 사람은 그걸 몰랐을 것이다.
그 말이 그렇게 정확하게 꽂힌 이유도 아마 여기 있다. 없는 걸 지어내서 붙여준 게 아니라 이미 하고 있던 일에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물론 그 만화는 이야기를 같이 짜준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저 설정이 전부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작년 가을에 그가 후배 방송인에게 자기 시계를 하나 준 적이 있다.
가져갈래, 하고 물었고 상대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시곗줄까지 직접 줄여서 손목에 채워줬다. 여기까지는 그냥 선물 이야기다.
내가 걸린 건 그다음에 그가 한 말이었다. 시계를 차면 휴대폰으로 시간을 볼 때랑 개념이 다르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구나 하는 걸 딱 인지하게 된다고.
시간이 지나가는 걸 자꾸 확인하게 되는 물건을 굳이 선물로 고른 사람인 것이다.
이 사람은 시간을 안 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꾸 본다. 나는 그게 저 문장의 전제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줄어드는 걸 세어본 적 없는 사람은 남의 시간을 다시 세어줄 생각을 못 한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두고 말을 예쁘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절반만 동의한다.
예쁘게 말하기는 배우면 된다. 상대가 아플 만한 단어를 피하고, 칭찬을 하나 얹고, 끝을 부드럽게 마는 것. 그건 연습으로 늘고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대체로 잘한다.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의 문장은 보통 이렇게 나온다. 에이 누나 하나도 안 변했어요. 이건 사실이 아닌 걸 서로 알면서 하는 말이라 듣는 쪽도 그냥 웃고 넘긴다.
그는 지나간 열몇 해를 없던 걸로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손실로 세지 않고 회차로 셌다.
말이 먼저 나온 게 아니라 계산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계산이 바뀌면 문장은 알아서 따라 나온다. 반대로 계산이 그대로면 아무리 다정한 단어를 골라도 결국 위로하는 척이 된다.
물론 나는 이 사람이 평소에도 그렇게 셈하며 사는지 모른다. 카메라 밖에서는 어땠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이 사람은 나이 앞에서 태연한 사람이 아니다.
여행 프로그램 마지막 시즌에서 그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말했다. 마흔이 되니까 점점 더 빨리 가는 것 같다고.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이미 다 해본 것 같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가 양식장에서 키우는 광어 같다고. 살기는 딱 좋은데 살아 있는 느낌이 안 든다는 뜻이었다.
같은 여행의 마지막 아침에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일 년 전에 해 지는 걸 둘이랑 같이 봤고, 다섯 달 전쯤 인도에서 해 뜨는 걸 혼자 봤고, 오늘은 다 같이 해 뜨는 걸 봤다고.
나는 저게 그가 시간을 세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이 지났나가 아니라 해를 몇 번 봤나. 그중 한 번은 혼자 봤다는 것까지.
이렇게 세는 사람한테는 나이가 그냥 숫자가 아니다. 몇 번째 청춘의 몇 번째 해인지가 된다.
그러니까 남에게 해준 그 말은 자기한테도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 짧은 영상이 퍼진 뒤에 사람들이 그 밑에 자기 나이를 적기 시작했다.
적힌 내용은 다 달랐다.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하고 있는 말은 하나였다. 나는 지금 몇 번째를 살고 있는가.
나도 그 습관이 있다.
몇 년 전에 나보다 열 살쯤 어린 사람들과 일한 적이 있는데, 회식 자리에서 누가 내 나이를 물었을 때 나는 숫자를 말하기 전에 먼저 웃었다. 아 저 이제 아저씨예요, 하고. 아무도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불렀다.
그러고 나면 그 자리는 편해진다. 대신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사람들 앞에서 뭘 새로 시작하겠다는 말을 못 하게 됐다. 스스로 정해둔 자리가 있으면 거기서 잘 못 나온다.
먼저 자학하는 건 안전한데 값이 나중에 청구된다.
이 문장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 있다.
두 번째라고 부르려면 첫 번째가 끝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안 늙었다고 우기는 사람은 두 번째를 시작할 수 없다. 청춘을 두 번 산다는 말은 젊음을 되돌려주는 말이 아니라, 끝난 걸 끝났다고 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말에 가깝다.
배우가 그 자리에서 웃은 이유도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하나도 안 변했다는 말이었으면 인사치레로 넘겼을 텐데 이 문장은 넘길 수가 없다. 자기 나이를 그대로 두고도 성립하는 문장이라서 그렇다.
나는 아직 내 첫 번째가 끝났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그 방에 앉아 있던 스무 살이 나중에 마흔이 됐을 때, 그날 옆에서 누가 저런 셈을 하는 걸 봤다는 게 기억날지는 궁금하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