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처음 보실 때 이런 경험 있으시죠.
영상은 재밌게 봤는데 다섯 명이 다 예쁘고 다 어려서, 끝나고 나면 누가 누구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다 좋더라" 하고 넘어가고, 그 뒤로는 다시 안 보게 됩니다.
키키도 처음 보면 똑같습니다. 다섯 명이 다 청량하고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 팀은 얼굴이 아니라 역할로 외우면 한 번에 기억됩니다. 저는 다섯 명을 회사 직원으로 놓고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키키가 자체 예능에서 '주식회사 키키'를 하는데, 그 설정이 이상할 만큼 잘 맞아서요.
다만 이 비유는 이름표일 뿐입니다. 한 명씩 보시면 그 이름표 아래에 진짜 매력이 있습니다. 그걸 이 글에서 풀어 보겠습니다.

키키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 5인조입니다. 2025년 2월 'I DO ME'를 먼저 공개하고 3월에 EP 'UNCUT GEM'을 내며 데뷔했습니다.
지유: 2006년생, 리더
이솔: 2005년생, 최연장
수이: 2006년생
하음: 2006년생
키야: 2010년생, 막내
지유가 키키의 가운데에 서 있으면 카메라를 어디 두든 시선이 지유로 모입니다. 키가 큰 것도 아닌데요.
이유는 몸을 쓰는 방식입니다. 404에서 지유가 가운데로 박차고 나오면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가 바로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짧고 정확해서, 작은 사람이 큰 동작을 할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한 번 보고 나면 지유 파트만 따로 돌려 보게 됩니다.
평소의 지유는 반대입니다. 무서운 호텔에서 귀신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멤버들 고기를 먹이느라 자기는 맨 마지막에 먹습니다. 멤버들이 소개하기를, 꼼꼼한 리더인데 물건을 의외로 잘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완벽한 팀장보다 이런 팀장이 더 정이 가죠.
이런 분이면 지유를 보세요.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 허술한 구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면요.
이솔은 맏언니이고 얼굴이 청순합니다. 그런데 노래가 시작되면 낮고 시원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 어긋남이 이솔을 보는 재미입니다. 멤버들도 "청순한 얼굴에 반전 중저음"이라고 소개합니다.
404의 '윙크윙크 메롱'은 이솔의 파트입니다. 가사만 보면 가장 귀여운 대목인데, 이솔이 낮은 목소리로 하니까 귀여움과 시크함이 같이 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매번 웃게 됩니다. 한 사람이 귀여운 말을 낮은 목소리로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자체 예능에서 이솔은 부장을 맡습니다. 직원의 이어폰을 보고 "저게 뭔가? 저게 뭔가?" 하고 묻는 장면에서 말투가 사극으로 바뀝니다. 본인은 진지한데 보는 쪽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죠. 운동회에서는 최종 우승까지 했습니다.
이런 분이면 이솔을 보세요. 얼굴과 목소리가 따로 노는 반전에 약하다면요.
수이 파트가 나오면 곡이 다른 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404에서 수이가 부르는 순간 분위기가 새로 시작되고, 음색이 튀지 않는데도 기억에 남습니다. 회사로 치면 회의에서 조용히 있다가 한마디로 흐름을 바꾸는 대리님입니다.
수이의 매력은 그 한마디와 정반대인 일상에 있습니다. 양궁에서 화살을 당기다 헤매고, 공주님 의상을 입고 수줍게 인사합니다. 엉성한 모습이 귀엽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시키면 의외로 잘합니다. 엉성한데 잘하는 사람이라서 지켜보게 되고, 별명이 강아토끼입니다.
이런 분이면 수이를 보세요. 허술해 보이는데 뜻밖에 잘하는 사람에게 약하다면요.

하음의 페이스는 독보적입니다. 화면에 잡히면 눈이 가고, 뮤직비디오에서 카메라를 든 컷은 한참 보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면 평범한 얼굴 담당인데, 하음은 춤이 더 좋습니다. 404 연습 영상에서 와이파이 안무를 할 때는 몸이 날아다닙니다. 얼굴이 좋은 사람이 이 정도로 추면 반칙입니다.
본인이 정한 별명은 뚱냥이입니다. "나는 키키의 뚱냥이 하음이야"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본인은 자기 얼굴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호텔 편에서 "하음 혹시 좀비 할래요?"라는 말에 고민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더 그렇고요.
이런 분이면 하음을 보세요. 예쁜 사람이 예쁜 것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을 좋아하신다면요.
키야는 막내이고 열네 살에 데뷔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낮습니다. I DO ME의 첫 소절도, 404의 도입부도 키야의 낮은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얼굴은 아기인데 소리가 어른이라서, 처음 들으면 화면과 목소리가 다른 사람 같습니다.
예능에서는 더 놀랍습니다. 아는 형님에 나와서 "나는 키키 수양대군 막내 키야요"라고 인사하고 선배들 앞에서 기세로 밀어붙입니다. 신입사원이 임원 회의에서 가장 크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귀신 호텔에서는 방의 귀신에게 "저는 서울 사는 2010년생 12월 18일에 태어난 사람이고요" 하고 자기소개를 합니다. 무서우니까 신분부터 밝히는 거죠. 기세 넘치는 수양대군과 귀신 앞에서 생일을 말하는 아이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분이면 키야를 보세요. 어른스러운 척하다 가끔 아이로 돌아오는 순간에 약하다면요.
다섯 명을 한 명씩 보고 나면, 이번엔 둘씩 묶어서 보셔야 합니다. 키키의 케미는 짝에서 나옵니다.
이솔과 키야, 맏이와 막내의 저음 라인. 둘 다 낮은 목소리라서 곡의 바닥을 같이 깔아 줍니다. 가장 어린 사람과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노래에서 같은 쪽에 서 있는 짝입니다.
지유와 하음, 챙겨 주는 사람과 챙김받는 사람. 방범대 편에서 하음이 지유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는 장면이 있는데, 평소에는 지유가 모두를 챙기니까 이 반대 방향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수이와 하음, 음식 메이트. 둘은 먹는 걸로 이어져 있다는 소개가 멤버 소개 코너에 나옵니다.
짝이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서 다섯 명이 한 줄로 서도 흩어지지 않습니다.
멤버 얘기만 길었는데, 노래도 사람 못지않게 이 팀을 말해 줍니다.
I DO ME 뮤직비디오에는 햇빛과 풀밭이 계속 나옵니다. 자연 속에서 소녀 다섯이 한 마을에 사는 것처럼 보여서 저는 마녀 배달부 키키가 떠오릅니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이 팀의 첫인상이었습니다.
404는 다릅니다. 하우스 비트가 일요일 오후 매장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라서 Y2K 감성이 확 옵니다. 그리고 이 곡의 가사 중 "백지를 내도 백점"이 저는 오래 남습니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이렇게 가볍게 하는 걸그룹 노래는 드뭅니다. 정답이 없는 걸 즐기는 팀이라는 선언처럼 들려서요.
자체 예능에서 팀 정체성을 정하는 회의를 하는데, "키의 정체성은 아무래도 물음표 아니겠습니까?"로 시작해서 결국 "키는 키다"로 끝납니다. 정의하지 않는 팀이라서 다섯 명이 이렇게 달라도 되고, 노래도 숲에서 하우스로 가도 되는 겁니다.
한 번에 다 보기엔 영상이 많으니 세 개만 추천드립니다.
첫 번째는 I DO ME 뮤직비디오입니다. 이 팀의 첫인상을 확인하는 영상입니다. 키야의 첫 소절을 들어 보세요.
두 번째는 404 연습 영상입니다. 지유의 동작, 하음의 춤, 수이의 파트가 다 보입니다. 멤버 구분이 가장 빨리 됩니다.
세 번째는 키키팡팡 '주식회사 키키' 편입니다. 이솔 부장이 사극 말투를 하는 영상이고, 이 글의 직장 비유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섯 명이 구분이 안 된다면 이 명단을 기억하세요.
1. 지유는 작은 몸으로 가운데를 가져가는 팀장이고, 허술해서 정이 갑니다.
2. 이솔은 얼굴은 신입인데 목소리는 부장님이고, 윙크윙크 메롱을 낮게 합니다.
3. 수이는 곡의 방을 바꾸는 대리이고, 엉성한데 운동은 잘합니다.
4. 하음은 얼굴로 설득하고 춤으로 끝내는 에이스이고, 좀비에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5. 키야는 신입인데 기세는 임원이고, 귀신 앞에서는 생일을 말하는 막내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명을 묶으면 각자 달라도 이상하게 한 팀이 되는 키키가 보입니다. 한 명만 고르라면 '이런 분이면' 문장에서 마음이 가장 크게 움직인 사람을 고르세요. 그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나머지 네 명은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