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를 시작해 보려는 분이라면 어떤 양식을 골라야 하는지보다, 한 권을 읽고 나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부터 정하시는 게 순서입니다. 책 줄거리를 길게 옮겨 적다가 세 권도 못 가서 멈추는 건 아닐까, 예쁜 양식을 찾느라 정작 책은 못 읽는 건 아닐까 싶으실 텐데요, 저는 위키백과의 SQ3R 항목과 코넬 노트 항목, 시험 효과(인출 연습) 항목을 열어 공부법에서 검증된 부분이 독서노트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 하나씩 맞춰 봤습니다. 꼭 필요한 다섯 칸, 쓰는 순서, 가상 예시, 흐지부지되는 이유와 고치는 법까지 한 번에 정리했습니다.
독서노트는 줄거리를 옮겨 적는 노트가 아닙니다. 읽고 나서 책 없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남기는 노트입니다. 줄거리는 이미 책에 있으니 노트에 또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칸은 다섯 개면 충분합니다. 책 정보, 기억할 문장, 책 내용을 내 말로 쓴 요약, 내 생각, 바로 해볼 일입니다. 시간이 없는 날에는 세 줄만 써도 됩니다.
다섯 칸을 하나씩 뜯어 보겠습니다.
칸 | 적을 내용 | 비고 |
|---|---|---|
책 정보 | 제목과 저자, 읽은 기간, 전체 쪽수 | 한 줄 |
기억할 문장 | 책에 쓰인 그대로 옮긴 문장과 쪽수 | 쪽수는 필수 |
내 말 요약 | 책을 덮고 기억나는 핵심을 내 말로 | 안 떠오르면 비움 |
내 생각 | 동의하는지, 의문이 드는지, 내 상황과 어떻게 닿는지 | 따로 칸 분리 |
바로 해볼 일 | 이 책을 읽고 이번 주에 실제로 바꿀 행동 하나 | 한 줄이면 충분 |
칸이 많을수록 쓰다가 지칩니다. 이 다섯 칸이면 나중에 노트만 펴도 그 책이 무슨 책이었는지 되살아납니다.
기억할 문장에는 반드시 쪽수를 같이 적으세요. 다시 찾을 때 책을 처음부터 넘기지 않아도 됩니다. 문장은 책에 쓰인 그대로 옮기고 내 생각은 다른 칸에 적어야 어디까지가 저자의 말인지 헷갈리지 않습니다.
칸을 알았으니 어떤 순서로 채우는지가 남았습니다.
한꺼번에 쓰려 들지 말고, 읽는 동안은 재료만 모았다가 다 읽은 날 정리하면 훨씬 가볍습니다.
읽는 중에는 기억하고 싶은 문장 옆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쪽수만 적어 둡니다. 노트에 옮기는 건 나중 일입니다.
다 읽은 날 책을 덮고 요약부터 씁니다. 안 떠오르는 부분은 비워 두세요. 그 빈칸이 이해가 덜 된 곳입니다.
표시해 둔 문장을 옮기고, 책을 펴서 요약에서 막혔던 부분을 다시 읽고 채웁니다.
마지막으로 내 생각과 바로 해볼 일을 씁니다. 이 두 칸이 비면 노트는 요약집이 됩니다.
요약을 책 덮고 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읽은 것을 기억에서 직접 꺼내 보는 연습이 다시 읽는 것보다 오래 남는다는 점은 학습 연구로 확인된 결과입니다. 대표 연구가 2006년 Roediger와 Karpicke의 「Test-Enhanced Learning」(Psychological Science)이고, 흔히 인출 연습 또는 시험 효과라고 부릅니다. 독서노트에서는 요약 칸이 그 연습을 하는 자리입니다.
이 순서가 오래된 공부법과 닮았다는 점도 짚어 둘 만합니다.
독서노트 양식은 새로 발명된 것이 아니라 오래된 공부법의 핵심을 책 한 권 단위로 줄인 것입니다.
SQ3R은 Francis P. Robinson이 1941년 책 『Effective Study』에서 소개한 읽기 방법으로, 훑어보기(Survey), 질문하기(Question), 읽기(Read), 말해 보기(Recite), 복습하기(Review) 다섯 단계입니다. 위 순서의 '책을 덮고 내 말로 쓰기'가 말해 보기에 해당합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목차를 보고 질문 하나를 만들어 두면 읽는 방향이 잡힙니다.
코넬 노트는 Cornell 대학교 Walter Pauk 교수가 1950년대에 만든 필기법입니다. 페이지 왼쪽에는 키워드나 질문, 오른쪽에는 본문 필기를 적고 아래에는 빈 공간을 둡니다. 독서노트에 응용한다면 오른쪽에는 요약, 왼쪽에는 나중에 스스로 던질 질문을 적는 식이 됩니다.
두 방법의 공통점은 읽은 것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내 말로 다시 쓰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아래는 책 『가상의 습관 입문』을 읽었다고 가정한 설명용 예시입니다. 실제 독서 후기가 아닙니다.
책 정보: 『가상의 습관 입문』, 가상 저자, 10월 1일부터 10월 9일까지, 240쪽
기억할 문장: "시작을 작게 만들어야 계속할 수 있다." (57쪽, 예시 문장)
내 말 요약: 습관은 의지보다 환경과 크기로 정해진다고 한다. 하루 5분처럼 부담 없는 분량으로 시작해서 같은 시간대에 붙이라고 한다. 뒷부분은 흐릿해서 책을 다시 확인할 것.
내 생각: 아침 시간에 붙이는 건 해볼 만하다. 저녁에 일정이 바뀌는 날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책에 답이 없었다.
바로 해볼 일: 이번 주 아침 커피 직후 5분 독서
예시를 그대로 따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칸의 모양만 가져가시면 됩니다.
3권을 못 넘기고 멈추는 노트에는 공통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줄거리를 길게 쓰면 쓰는 데 지칩니다. 요약 칸은 짧게 묶어 두세요.
내 생각 칸이 계속 비면 억지 감상 대신 '동의한다, 반대한다, 모르겠다' 중 하나를 고르고 이유를 한 줄만 붙입니다.
다 읽고 한참 뒤에 쓰면 요약이 안 떠오릅니다. 다 읽은 그날 쓰는 게 가장 쉽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면 기억나는 만큼만 쓰고 끝내도 됩니다.
양식을 계속 바꾸면 템플릿 고르다 책을 안 읽게 됩니다. 한 달은 다섯 칸 그대로 쓰고, 석 달쯤 지나 불편해진 칸만 손보세요.
문장 옮기기는 재료 모으기일 뿐입니다. 바로 해볼 일 칸이 빈 노트는 읽기만 하고 끝난 노트입니다.
정말 시간이 없는 날은 세 줄 버전으로 줄이세요. 문장 하나, 요약 한 줄, 해볼 일 한 줄이면 끝납니다.
Q. 독서노트와 독후감은 뭐가 다른가요?
A. 독후감은 읽는 사람이 있는 글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갖춘 형태여야 합니다. 독서노트는 나중에 내가 꺼내 쓰는 기록이라 항목으로 짧게 적어도 됩니다. 독후감을 써야 한다면 독서노트의 요약과 내 생각 칸이 초안이 됩니다.
Q. 독서노트 양식 PDF를 받아야 쓸 수 있나요?
A. 필요하지 않습니다. 위의 다섯 칸 표를 공책에 선 몇 개로 그리면 그게 양식입니다. 종이로 들고 다니고 싶다면 표를 문서 프로그램에 옮겨 한 장짜리로 인쇄하면 됩니다.
Q. 노션이나 앱으로 써도 되나요?
A. 결국 오래 쓰게 되는 도구가 맞는 도구입니다. 종이, 메모 앱, 노션 어느 쪽이든 다섯 항목만 있으면 됩니다. 도구별 기능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각 서비스의 공식 안내에서 보시는 게 정확합니다.
독서노트는 예쁜 양식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책을 덮고 내 말로 꺼내 보는 연습을 노트 한 장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그 연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건 이미 학습 연구가 보여 줬고, 다섯 칸은 그걸 가장 가볍게 옮긴 모양입니다. 오늘 할 일은 하나입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을 떠올리며 세 줄 버전을 써 보세요. 5분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