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얘기로 시작했다.
자산이 700조 원쯤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명목 GDP의 3분의 1 수준이다.
2008년에 24퍼센트를 까먹었다.
여기가 24퍼센트를 까먹었다는 건 미국의 국부가 30퍼센트쯤 날아갔다는 얘기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 한국은 반토막이 났다는 뜻이라고.
통장에 100만 원 있는 줄 알았는데 다음 날 깨 보니 50만 원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때 모든 중앙은행이 나서서 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까지 한 거라고.
그 연금이 그해 5.8퍼센트를 벌었는데 목표치가 6.8이었다.
이거밖에 못 벌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는 이 말을 붙였다.
글로벌 최상위 헤지펀드들의 요구 수익률이 7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7퍼센트면 10년에 두 배니까 엄청난 수익률인데, 그 이상을 먹으려는 건 내가 세계 최고 헤지펀드보다 잘하겠다는 얘기가 된다고.
국민연금이 매년 7퍼센트를 벌면 엄청나게 잘하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개인들은 만족하지 못하죠, 하고 덧붙였다.
캘리포니아 쪽 연금이 잘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는 급여를 들었다.
2015년 자료 기준으로 50만 달러쯤이었다고 했다. 제일 잘하는 사람들은 원래 뉴욕에 있는데, 그 사람들을 캘리포니아까지 오게 하려면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냐는 물음에 그는 잠깐 말을 골랐다.
연기금 운용자 대우가 그렇게 좋지 않다고 했다. 자기가 굴리던 연기금이 50개쯤 됐는데, 지금 주는 것의 열 배는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성과 기반으로 잘 안 준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쪽의 진짜 장점을 짚었다.
독립성이라고. 법으로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우리 국민연금은 그보다 크다. 1000조 원이다. 1973년에 법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반대가 심했다. 기금운용본부는 전주에 있다.
글로벌 3위라고 그는 말했다.
큰손들이 한국에 오면 국민연금 미팅부터 잡는다고. 인천에 내리자마자 전주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우리나라에 왜 이렇게 돈이 많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고. 국가 단위로 돈을 다 모아서 단일 연금으로 적립식 운용을 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일본과 한국 정도라고. 다른 나라들은 한번 하다가 어려워져서 방식을 바꿨다고.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유를 네 가지로 들었다.
첫째, 국민연금은 나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원화로 줘야 한다. 그러니 수익을 내야 하는데, 그 돈을 전부 국내에 넣으면 같이 망한다.
둘째, 규모가 안 맞는다. 코스피 시가총액이 1000조를 조금 넘는데 연금이 1000조다. 이미 국내 주식은 담을 수 있는 한도가 차 있고, 한 종목에 담을 수 있는 상한도 이사회가 정해 준다.
셋째, 언젠가 팔아야 하는 시기가 온다. 지금은 들어오는 돈이 많으니 사는 시기지만, 연금이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 그때 저걸 팔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넷째, 많이 사면 거의 모든 회사의 1대 주주가 된다. 연금이 1대 주주인 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시장이 작아서 그런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여기서 숫자가 커진다.
전 세계 연기금을 다 합치면 2경에서 3경이 넘는다고 그는 말했다. 국부펀드까지 넣으면 그 이상이라고.
우리나라 코스피 시가총액의 서른 배가 뭘 사려고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서론인데 본론은 언제 시작하냐는 말이 그때 나왔다. 그냥 글로벌 연금이 크다, 몇 경이다 하고 시작하면 될 걸 왜 이러시냐고.
그가 이렇게 답했다.
우리 아버지는 외벌이로 집을 샀는데 왜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돈도 못 쓰는데 집을 못 살까.
그 질문과 지금부터 할 얘기가 관계가 있다고.
여기가 이 회차의 핵심이었다.
전 국민에게 만 원씩 나눠 주면 금융시장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다들 들고 있다가 밥 사 먹고 끝나니까. 실물에서 그냥 도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들에게 만 원씩 떼어서 연금에 넣으면 그건 금융시장에 들어가야만 하는 돈이 된다.
없는 돈이 생기는 거예요. 투자금이 아니었던 게 투자금이 되는 거지.
1950년대에는 기금이라 할 게 거의 없었다고 그는 짚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연기금이 커졌고, 이들은 무조건 투자해야 한다. 가만히 들고 있을 수가 없다. 가입자에게 돌려주려면 인플레이션율보다 높은 수익을 내야 하니까.
그러니 온 전문가가 달려들어 투자한다.
그러면 개인보다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가 짚은 게 이거였다.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스펙트럼으로 쭉 있다고 하면, 제일 좋은 건 저 사람들이 가져간다고.
개인은 위험 대비 수익이 그 바깥에 있는 자산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우리가 2차전지 같은 걸 하게 되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연금이란 제도는 새로 발명된 연금술 같다고. 금융시장에 의미 없던 돈을 모아서 의미 있는 투자자금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그 순환을 그는 이렇게 그렸다.
연금이 늘어난다. 투자한다. 자산 가격이 오른다. 임금과 자산에 비례하는 연금이 또 늘어난다. 다시 투자한다.
실물 세상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따라 연금이 늘 수도 줄 수도 있지만, 자산 시장에서는 확실히 올라간다고 그는 말했다.
70년 동안 이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근로소득이 자본소득을 못 따라가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우리가 임금 소득만으로 집을 못 사는 이유를 굉장히 많은 부분 설명한다고.
시작할 때는 좋은 제도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2차대전 뒤에 먹고살 게 없으니 소비를 뒤로 미루게 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그런데 70년이 지나니 그 제도 자체가 자산 가격을 한 방향으로 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그러면 왜 다들 인플레이션을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연금은 분명히 내 돈인데 20년 30년 뒤에 주는 돈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 밥을 먹고 싶은데 내 손엔 없는 돈. 어렸을 때 엄마가 나중에 준다고 하던 세뱃돈 같은 것.
인플레이션이 너무 오르면 그 돈이 사라진다.
그러고 바이마르 공화국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빵을 사러 가는데 돈을 수레에 싣고 가야 했다. 강도가 와서 돈은 다 버리고 수레만 가져갔다.
돈이 쓰레기였던 때가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미국이 1970년대에 물가가 뛸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한 거라고. 국민에게 약속한 돈의 실질 가치를 못 지킨다는 불안이 퍼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라고.
당시 유럽에는 연금에 기대어 사는 중산층이 굉장히 많았다고 그는 짚었다. 그게 무너진다고 생각하니까 중산층이 히틀러를 선택한 거라고.
인플레이션은 그냥 다 죽는 길이고 디플레이션은 천천히 죽어 가는 길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그걸 조절하는 게 경제정책이라고.
마지막에 그는 만화를 하나 가져왔다.
미지의 존재에게 지구를 잃은 인류가 거대한 배를 만들어 우주로 도망친 세계다. 씨앗을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파종선이라고 부른다.
그 배는 계속 가속해야 한다. 적을 만나거나 방해물이 생겨서 방향을 틀면 배 안이 통째로 흔들린다. 정착지를 못 찾으면 그냥 끝이다.
지금까지 연금 얘기를 들으면서 무슨 소리인가 하셨을 텐데, 이걸 본 분들은 확실히 이해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도 어차피 상승하지 못하면 죽는 구조라고.
연금이 줄어드는 걸 왜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아느냐고 그는 물었다.
가속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수십 년 뒤에 만 원을 주겠다는 약속 하나로 지금의 돈을 걷어서 굴리는 배에 다들 타고 있는 셈이다. 그 배가 멈추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들 계속 밀고 있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 연금 수익률과 배분 비율과 기금 규모를 늘어놓고 나서, 그가 마지막에 남긴 그림은 멈출 수 없는 배 한 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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