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에는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가 따로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일부러 가르는 것이다.
언제 사고 팔지를 서로 모르게 만들고 정보를 차단한다. 이 매니저가 파는 걸 저 매니저가 알면 안 되니까, 담배 타임에 같이 얘기하는 것도 막는다.
트레이더의 일은 매니저가 애플을 200달러에 사 달라고 하면 그걸 잘 실행하는 것이다. 평가도 그렇게 한다. 종가 대비 내 평균단가가 살 때는 낮아야 하고 팔 때는 높아야 한다.
그런데 2007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호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대형 은행의 트레이더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12년을 일해서 화면만 봐도 수급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가 주문을 누르면 화면에 있던 호가가 싹 사라졌다.
미국에는 거래소가 많다. 메이저만 열일곱 개고 다 합치면 쉰 개가 넘는다. 그래서 주문을 넣으면 라우터라는 게 여러 거래소로 쪼개서 뿌린다. 20개, 30개, 50개씩 나뉘어 체결되고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눌러 보니 첫 거래소에서 다섯 주만 체결되고 나머지 호가가 다 없어졌다.
그러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 올려도 안 된다.
거래소 하나에만 넣으면 100주가 다 체결됐다. 여러 군데 넣으면 자기가 보고 있던 시장이 사라졌다.
그가 여기에 이름을 붙였다.
슈뢰딩거의 호가창.
내가 보면 붕괴돼서 고정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이랑 똑같지 않냐고.
캐치는 왜 놓쳤어요, 하고 옆에서 놀렸다. 슈뢰딩거의 캐치.
그 트레이더가 다른 기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물어봤더니 다들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기술 쪽 배경이 있는 사람이 답을 냈다.
거래소까지 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게 100밀리초라고 그는 설명했다. 밀리초는 1000분의 1초, 마이크로초는 100만분의 1초, 나노초는 10억분의 1초다.
그런데 1밀리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똥컴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못을 박았다. 광케이블이 실제로 어떤 경로로 도는지가 거래소마다 다르다고. 바로 옆에 있는 거래소인데 회선이 빙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내가 주문을 누르면 라우터가 여러 거래소로 동시에 보낸다. 그런데 제일 가까운 곳에 먼저 도착한다. 거기서 다섯 주가 체결된다.
그 다섯 주를 초단타 매매 쪽에서 눈치챈다.
그들은 이미 거래소마다 얇은 호가를 걸어 두고 있다. 다섯 주가 먹히는 순간 패턴을 분석해서 이게 큰손의 주문이라는 걸 안다.
그러고는 나보다 먼저 다른 거래소로 달려가서 거기 있는 호가를 다 먹어 버린다. 그리고 그 위에 자기 호가를 건다.
내가 애플을 200달러에 1000주 사려고 했는데 다섯 주 사고 나면 201달러가 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사야 한다.
그러니 속도가 전부가 된다.
거래소 서버에 최대한 붙여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물리적으로 붙여야 한다고. 같은 건물, 같은 층, 심지어 같은 방 안에서도 서버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컴퓨터도 제일 좋은 걸 쓰고 3개월마다 서버를 간다고 했다. 통신사도 여러 개를 써 보고 제일 빠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해지한다고. 나중에는 아예 자기 회선을 깐다고.
옆 건물을 통째로 사는 곳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거래소가 그 자리를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베이트가 붙었다. 거래를 많이 하는 쪽에 거래소가 돈을 준다. 수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준다.
그러면 기관은 비용을 아껴야 하니 그 거래소부터 치게 된다.
거기서 신호가 잡힌다.
또 하나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증권사에는 사겠다는 고객과 팔겠다는 고객이 같이 있다. 큰 고객들은 자기 주문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증권사가 자기 안에서 둘을 연결해 준다.
이걸 다크풀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합법이고 한국에서는 안 된다.
좋아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시장을 밀지도 올리지도 않고 안에서 체결되니까.
문제는 바깥에 더 좋은 호가가 있어도 안에서 체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증권사들이 그 안에 초단타 매매 쪽을 돈을 받고 들여보내 줬다.
여기 10만 주 나왔다는 걸 보고 딴 데 가서 또 울렸다는 것이다.
그거 교란 세력 아니에요, 하는 말이 나왔다.
미국은 그런 관치가 없다고 그는 답했다. 최소한의 규칙만 지키게 하고 자율적으로 두는데, 대신 걸리면 다르다고.
우리나라는 하지 마라, 하지 말랬지, 얼굴 왜 하니 하는데 미국은 하다가 걸리면 100년이라고 그는 말했다.
대대손손 들어가실 수 있다고.
2005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이걸로 매년 수조에서 수십조가 나갔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유동성 공급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연기금 입장에서 보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돈을 낸 거라고. 드러나지 않는 수수료라고. 비싸게 사고 싸게 팔아야 했으니까.
지난번에 다룬 캘리포니아 쪽 연금 같은 데도 몇 천억은 냈을 거라고 그는 봤다.
그러면 다 처벌받았을 것 같지만 지금도 똑같다고 했다.
불법인지가 애매하다고. 기관들이 열받아서 항의하고 개선이 좀 되긴 했지만 기본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고.
그러고 그가 붙인 문장이 이거였다.
당신이 서비스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지 않으면 당신이 상품인 거예요.
공짜는 없다고.
이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장면이 회선이다.
두 지점을 최대한 직선으로 잇겠다고 산을 뚫고 강을 건너서 케이블을 깐 사람들이 있었다. 몇 밀리초를 줄이려고.
그렇게 뚫은 게 131킬로미터였다.
돈이 걸리니까 금방 뚫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 소련 얘기를 하나 붙였다. 컴퓨터가 귀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을 배급받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대접받았겠느냐고.
여기서 그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시장은 원래 개념적인 거라고 그는 말했다. 물리적으로 어디에 시장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보는 순간 다른 시장이 된다고.
우리도 그걸 매일 겪고 있다고 그는 짚었다. 관심종목에 올려놓으면 다음 날 가격이 움직이는 것 같은 감각. 초단타 매매는 뉴스로 올라오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게 뭔지 모른 채로 겪는다고.
우리는 브로커가 하나뿐인데 몇백만 명이 거기 붙어서 같은 종목을 본다고.
그러고 이 표현을 썼다.
우리 패를 보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해결책이 하나 나온다.
거래소를 하나 새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방법은 반대였다.
빠르게 만드는 게 아니라 늦추는 것이다.
모든 주문이 거래소에 도달하는 시간을 일부러 똑같이 만들어 버렸다. 먼저 도착해서 다른 거래소로 달려가는 짓을 못 하게.
여기서 그가 결론을 냈다.
속도를 줄이는 놈들을 이기는 방법은 길게 만드는 거라고.
3년을 투자해 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 돈을 굴리는 연기금들도 계속 저런 식으로 주문을 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 한 시간 동안 나노초 얘기를 한 사람이 마지막에 한 말은 이거였다.
느리게 하라고.
파동을 보고, 장기 투자를 하라고.
이 회차에서 제일 서늘했던 건 그가 옮긴 한 장면이었다.
그 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쟤네 아직도 손으로 주문 내냐.
우리가 화면을 보고 클릭을 하는 그 몇 초 사이에 저쪽에서는 수천 번의 판단이 오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가 그 얘기를 하고 나서 내놓은 조언이 더 빨라지라는 게 아니었다.
거기서 이기려고 하지 말라는 쪽이었다.
몇 밀리초를 줄이려고 산을 뚫는 사람들과 같은 판에서 겨루려면 산을 뚫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 게임을 안 하면 된다.
3년이 걸리는 판단에는 나노초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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