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카르텔 두목의 벽 사진으로 시작했다.
벽 한 면을 달러 지폐로 가득 채워 놓은 사진이다.
1000달러짜리를 쓴다고 해도 벽을 다 채우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고 그는 말했다.
여기서 그가 던진 질문이 이거였다.
한국 원화도 저 벽에 넣을까요.
넣을 수 있죠, 자산 배분을 해야 하니까, 하는 대꾸가 나왔다.
우선 한국 돈은 단위가 너무 커요. 그가 그렇게 답했다.
왜 다들 달러를 원하는가.
기축통화의 조건이라고 하면 보통 경제 규모, 안정성, 유동성 같은 걸 든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나라 통화의 가치는 그 나라 항공모함 개수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진정한 통화의 파워는 무력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무역수지도 경상수지도 재정수지도 다 적자라고 그는 짚었다. 그런데도 다들 달러를 원한다고. 북한에 가서 달러를 줘도 받을 것 같다고.
그 통화가 갖는 아우라가 있는 거라고.
여기서 파나마 페이퍼스 얘기를 꺼냈다.
파나마에 있던 로펌 한 곳에서 내부 문건이 통째로 유출됐다. 페이퍼컴퍼니가 20만 건 넘게 들어 있었다.
수많은 유명인의 이름이 나왔고 한국인 이름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거기에 자기 이름이 없어서 삐졌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아이슬란드는 총리가 사임했다. 금융위기 직전에 돈을 빼돌린 게 그 문건에 있었다.
그 로펌 하나에서 나온 돈이 1조 달러쯤이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1300조 원이다.
그러고 그가 조용히 붙였다.
그걸 폭로한 기자는 2017년에 차량 폭발로 죽었어요.
지금 검색해 보면 그때 나온 기사가 상당수 사라졌다고도 했다.
조세피난처 순위에서 파나마는 아래쪽에 있다고 그는 짚었다. 그러니까 제일 작은 데서 그만큼 나온 거라고.
한국이 그 순위에 꽤 높이 올라 있는 걸 보고 옆에서 물었다. 우리는 검은돈이 아니라 수출하다 잠깐 두는 하얀 돈 아니냐고.
수출은 페이퍼컴퍼니로 갈 수가 없어요. 그가 그렇게 답했다.
여기가 이 회차의 출발점이었다.
우리나라는 2만 달러 이상 들고 나가면 공항에서 제지당한다. 은행에서 일정 금액 이상 찾으면 신고가 들어간다. 외화 계좌는 다 신고 대상이다.
내국인이 외화를 얼마나 보유하든 상관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반출은 굉장히 힘들다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특히 심하다고.
그런데 저 돈은 다 어디로 어떻게 나간 걸까.
그게 유로달러라고 그는 말했다.
원화는 한국 안에 있으니까 다 체크된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다 볼 수 있다고. 금감원이 까면 다 나온다고.
달러는 다르다.
달러는 통화 세상의 암흑물질 같은 거예요.
분명히 있긴 있는데 탐지도 안 되고 추적도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제일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 내가 발행한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미국은 70년 동안 그러고 있다고.
미국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의 통제 밖에 있는 달러를 유로달러라고 부른다. 지금 13조 달러쯤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우리 돈으로 1경 7500조 원이다.
그것도 그나마 잡히는 것만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유로달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가 설명했다.
2차대전 때 소련과 미국은 같은 편이었다. 그래서 소련이 가진 달러는 미국 은행에 계좌를 트고 넣어 뒀다.
그런데 냉전이 시작되니 뺏길 것 같았다.
그래서 런던으로 옮겼다.
런던 시티는 특별구라고 그는 짚었다. 영국 왕도 마음대로 못 들어가는 곳이라고. 성당에 들어가면 경찰이 못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거냐는 말에, 금융 쪽에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냥 들고 있으니 이자가 안 붙었다. 그래서 소련 쪽 은행이 영국 은행에 그 달러를 빌려줬다. 영국이 받았다.
미국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통화는 그 나라의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소련 돈이 필요하면 소련 은행을 거쳐야 했던 시절이다.
한번 해 봤는데 되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달러가 미국의 감시 밖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런던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된 거라고 그는 봤다. 제국이었던 것도 크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유도가 거기 있다고.
런던에 러시아 부자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그거라고 했다. 런던은 뭔가 포용력이 있다고. 쫓겨난 사람도 일단 받아 준다고.
우리 장이 끝나고 싱가포르와 프랑크푸르트가 깔짝거리다가 영국 장이 열리면 확 움직이는 것도 거기가 유로달러가 거래되는 진짜 큰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짚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 돈은 욕을 많이 먹었다.
마약으로 받은 돈은 내 이름으로 입금할 수가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데 이쪽으로 몇 바퀴 돌리고 나면 깨끗한 달러가 된다고.
그러면 나는 아주 저명한 투자자가 되는 거예요.
그 시절에 누가 유로달러를 죄악의 호문쿨루스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런데 70년대 80년대가 되면 비난만 하지는 않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논리가 이랬다. 벽에 넣어 둔 돈은 안 쓰는 돈이라는 것이다. 써 봤자 요트를 사는 데나 쓴다고. 그러니 우리가 밥값이 2만 원에서 3만 원 되는 데는 영향을 안 준다고. 자산 가격만 올린다고.
그리고 미국은 계속 적자를 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써 줘야 신흥국이 성장하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유로달러 규제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재미있는 반박을 했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를 내걸고 나왔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탈중앙화된 통화가 있다는 것이다.
유로달러야말로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그러니 검은돈을 가진 사람들은 비트코인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미 유로달러로 요트도 사고 회사도 사고 펀드에도 가입할 수 있으니까.
우리 같은 서민이나 탈중앙화 해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가 그렇게 말했다.
달러를 저렇게 많이 찍어 내니 비트코인이 금처럼 희소해서 오르겠지, 하는 쪽은 우리라고.
그러면서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가 했다는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파운드를 버렸을 때 달러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달러를 버리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걸 비트코인으로 바꿔 물으면 갈 수도 있다고 그는 봤다.
그런데 비트코인보다 더 자유로운 통화가 있다고 덧붙였다.
원화요. 아무도 신경을 안 쓰니까.
마지막에 시장으로 왔다.
유로달러는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돈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냥 조용히 있고 싶고, 미국 국채 정도만 들고 있고 싶고, 나중에 쫓겨나면 그 돈으로 살고 싶은 돈이라고.
화산 밑에 잠재된 것처럼 계속 응축되고 있다고. 달러는 계속 밖으로 나가서 쌓이니까.
그런데 지금 달러가 약해지고 금리도 낮아질 것 같다.
그러면 빌리려는 사람이 생긴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 달러로 빌려서 나중에 달러로 갚으면 유리할 것 같으니까, 유로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 런던 같은 데 가서 빌려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엔이 약해질 때 엔캐리 트레이드를 했던 것과 같은 구조라고 했다.
다만 엔캐리는 국가가 보장하는 거고 이건 아니라고.
우리는 미국 주식을 사려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환전을 하고 그건 다 걸린다고 그는 짚었다. 헤지펀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러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유로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하면 뭘 사겠어요.
달러가 아닌 자산을 사야 하는 거라고 그가 스스로 답했다.
한 시간 동안 카르텔의 벽과 파나마의 로펌과 냉전기 런던을 돌아온 끝에, 그가 도착한 자리는 코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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