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사흘을 쉬었다고 했다. 출근도 안 하고.
그러면서 엡스타인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할까 말까 오래 고민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유가 웃겼다. 자기가 나름 음모론자인데 엡스타인은 다뤄 봐야 음모론으로 안 쳐 준다는 것이다. 다들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달 착륙 정도는 가져와야 논란이 생기는데 엡스타인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소리나 듣는다고.
그래서 사흘 동안 사람들이 뭘 놓치고 있는지를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워터게이트부터 시작했다.
1972년에 다섯 명이 워터게이트 호텔 사무동에 들어갔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달려다 잡혔다. 그중 하나가 닉슨 재선위원회 보안 책임자였다.
백악관이 수사를 방해했고 몇 년을 끌었다. 그걸 끝낸 건 워싱턴포스트의 신참 기자 하나와, 그 기자에게 계속 제보한 사람이었다.
딥스로트라고 불렀다. 당시 유명한 포르노 제목에서 따온 별명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30년 넘게 아무도 몰랐다. 2005년에 여든 몇 살이 되어 죽기 직전에야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고 그는 말했다. 승진에서 밀려 앙심을 품었다는 것부터 그냥 이건 아니다 싶었다는 것까지.
어쨌든 그 뒤로 미국에는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신문사에 가져다주는 문화가 생겼다.
미국 언론이 사주 마음대로인 건 맞지만 기자들은 은근히 곤조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동양 기자들은 죄송하다는 말을 붙이면서.
엡스타인 파일이 공개됐다. PDF로 350만 페이지, 영상 2천 개, 사진 18만 장이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다.
법무장관이 변호사 400명과 FBI 분석가 100명을 투입했는데 너무 많아서 못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스크린이 불안정하다고 그는 말했다. 어떤 페이지는 검게 칠했는데 포토샵으로 열면 보인다고 하고, 트럼프가 그대로 나오는 페이지는 제보가 들어가면 황급히 가려진다고. 그런데 업데이트할 때 아까 없던 게 또 나온다고.
여기서 그가 본 건 다른 것이었다.
변호사 400명이 혼자 일하겠느냐고 그는 물었다. 비서도 있고 복사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2천 명이 그 문서를 나눠서 눈으로 읽고 있을 거라고.
그중에는 트럼프 편도 있고 트럼프가 싫은 사람도 있다.
지옥문을 연 거라고 그는 말했다.
워터게이트는 3년이 걸렸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건 이제 한 달 됐다고.
2019년 8월 10일 아침 6시 30분에 교도관들이 엡스타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려서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알 거라고 그는 말했다. 거기서 죽으면 그 자리가 범죄 현장이다. 아무것도 만지면 안 된다. 그런데 살리려고 내리고 소방관이 오고 병원으로 옮기다 보면 증거가 다 흐트러진다.
감시 카메라 두 대가 하필 그때 다 고장 났다. 교도관들은 순찰을 안 했다. 이층 침대를 같이 쓰던 룸메이트는 그 직전에 어디론가 옮겨졌다.
전전날에는 유언장에 서명했다. 감옥에 간다고 재산을 넘기지는 않는다고 그는 짚었다. 형량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
전날 밤에는 어머니와 통화한 기록이 남았다. 어머니는 15년 전에 돌아가셨다.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직무를 유기한 교도관 두 명은 사회봉사 100시간을 받고 끝났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얘기다. 돈 많은 나쁜 놈이 성범죄를 저질렀고 죽었는데 죽음이 이상하다는 것.
그가 붙잡은 질문은 다른 것이었다.
엡스타인의 재산이 7천억 원쯤이었다. 몇 조를 가진 줄 알았는데 그것밖에 안 됐다.
7천억짜리가 20년 동안 그 일을 혼자 할 수 있었을까.
2008년에 이미 FBI가 조사했고 검찰까지 넘어갔는데 불기소로 끝났다. 그러고도 10년을 더 했다.
이걸 음모론이라고 부르기 전에, 20년 동안 처벌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음모론적이지 않느냐고 그는 물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쪽이 더 음모론적인 거라고.
그래서 질문은 엡스타인이 아니라 길레인 맥스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길레인 맥스웰은 지금 살아 있다. 20년형을 받고 미국 감옥에 있다.
우리는 그를 그냥 조력자로 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본질은 그 집안 쪽에 있을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은 1923년에 체코의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로 가족이 전부 죽었고 혼자 영국으로 탈출했다. 영국군에 입대해 훈장까지 받았다.
원래 이름은 얀 루드비크 호크였다. 너무 유대인 티가 나서 바꿨다. 맥스웰 커피를 보고 로버트 맥스웰로 정했다고 한다.
전후에 학술 출판사를 차렸다. 패전국이 된 독일의 학자들은 논문을 낼 데가 없었고, 그는 그걸 헐값에 받아 전 세계 대학과 도서관에 팔았다. 돈은 자기가 다 가졌다.
미안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가족을 다 죽였잖아.
그렇게 번 돈으로 신문사를 샀고 언론 재벌이 됐고 노동당 하원의원까지 했다. 노동당이라고 노동자 편일 것 같지만 아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노동자를 심하게 쪼았고 집 안에서는 폭군이었다.
아이가 아홉이었다. 길레인은 그중 막내딸이다.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요트에 딸 이름을 붙여 레이디 길레인이라고 불렀다. 배에 딸 이름을 붙이는 건 좀 불길하지 않냐고 그는 지나가듯 말했다.
길레인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사교계에서 아버지 대신 먹히는 카드였다.
친구들의 평가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반갑게 인사하는데, 눈은 늘 여기서 누가 제일 센 사람인지를 찾고 있더라는 것이다. 대화를 하는데도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
1991년에 아버지가 요트에서 사라졌다. 대서양 한가운데였다. 얼마 뒤 바다에서 알몸으로 발견됐다.
밤에 떨어졌는데 아무것도 안 걸치고 있었다. 물고기가 옷을 뜯어 먹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실족사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영국 언론 재벌이 예루살렘에 묻혔다. 그것도 잘 안 내주는 자리에, 거의 국장급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참 많은 일을 해 줬다는 축사가 나왔다.
아버지가 죽은 뒤 길레인은 뉴욕으로 갔고, 엡스타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엡스타인은 베어스턴스에서 쫓겨난 뒤 런던으로 갔던 사람이다. 무기 중개까지 했다.
그가 상류층 사람이었던 적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상류층의 돈을 관리해 준 사람이었다고.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길레인이었다.
파일에는 러시아라는 단어가 5876번, 푸틴이 155번 나온다. 실제로 러시아 보안국 출신들과 친하게 지냈다.
첩보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친하다고 그는 말했다. 주는 게 있고 받는 게 있고 서로 안 죽인다고.
그런데 그 섬에 간 사람 명단에 러시아인은 한 명도 없다. 이스라엘은 한 명이다.
전 세계의 반쪽만 지금 불타고 있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유럽은 이름이 한 번 나오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것만으로 사임하고 기소되고 있다. 영국 총리도 잘리게 생겼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미국 FBI 파일인데.
이 파일이 공개된 과정도 이상했다고 그는 말했다.
민주당이 트럼프를 치려고 한 게 아니었다. 초당적으로 발의됐고 하원에서 427 대 1로 통과됐다. 상원은 만장일치였다.
오히려 공화당 쪽이 더 강하게 밀었다. 마가 지지자들은 원래 피자게이트를 믿던 사람들이다. 이걸 까면 추잡한 것들이 민주당에서 쏟아져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트럼프는 처음엔 반대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관세도 해야 하고 중국과 싸워야 한다고. 그러다 통과 사흘 전에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까 보니 불길이 그쪽으로 갔다.
FBI 부국장 댄 봉지노는 트럼프가 임명한 사람이었다. 당선 전부터 팟캐스트에서 이건 무조건 까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이다. 그런데 안에서 자꾸 까라고 하다가 잘렸다.
민주당이 공격하면 정치 공세라고 하면 된다. 마가 안에서 나오면 그럴 수가 없다.
트럼프의 가장 약한 자리가 자기 편 안에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만장일치가 난 11월 19일 이후 트럼프가 한 일들을 그는 날짜별로 늘어놓았다. 12월 29일 네타냐후 면담, 1월 3일 마두로 체포, 1월 7일과 24일 이민국 사살, 1월 30일 케빈 워시 지명, 그리고 이란 폭격 이야기.
평화주의자였던 사람이 새 전쟁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여기서 시장 얘기가 나왔다.
미국이 왜 이렇게 빠지는지를 사흘 동안 생각해 봤다고 했다.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닌데 왜 미국과 유럽이 이렇게 약한가.
정치적 그립이 약해질 때, 사람들이 다음 정권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주식이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가 2024년과 2025년에 겪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꽉 잡고 돈을 밀어줘도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길까 말까 한 국면이다. 그런데 보스가 자기 진영에서 지지를 못 받는다.
미국 주식시장이 투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시장이 되어 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가 헤지펀드에 있었으면 나스닥을 숏 치고 코스피를 롱으로 잡았을 거라고 했다. 3년 동안 나스닥은 올랐고 코스피는 이제 올라가는 중이니까.
물론 자기는 잘 틀리니까 감안하라는 말을 붙였다.
여기서 방송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앞부분이 너무 무거워서 뒤에 캐주얼한 걸 준비했다고 그는 말했다. 쉬는 동안 옛날 친구가 얘기해 준 겨울연가를 20년 만에 다시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줄거리를 20분 동안 했다.
춘천에 검은 교복 입은 잘생긴 전학생이 온다.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 그런데 이복형제로 추정되는 애의 여자친구를 좋아하게 된다. 사진을 보고 남매인 줄 알고 미국으로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10년 뒤에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재결합하고 또 헤어지고 또 재결합한다. 알고 보니 남매가 아니었는데 그때는 눈이 안 보이게 된다.
부모 세대 관계까지 그가 직접 정리하다가 중간에 이렇게 말했다. 나도 복잡하다고. 알아서 찾아보시라고.
명작은 심플한 플롯으로는 안 되는구나 하고 반성했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가 도서팀장이니까 이런 식으로 써야 먹힐 텐데 자기 책은 너무 단조롭다고. 그래서 쓰던 원고를 다 갈아엎고 다시 쓰고 있다고 했다.
최소한 삼각관계는 나와야 하고 주인공은 꼭 미국에 보내야겠다고.
그러고는 교훈 세 개를 꺼냈다.
하나. 겉모습은 업그레이드되는 경우가 있다. 과학고 다니던 고등학생이 8년 만에 개발사 대표가 되어 돌아오듯, 코스피도 1년 전 2400에서 오늘 5800을 찍었다고.
둘. 그대로 오면 안 된다. 나이만 먹어서는 안 되고 성숙해서 와야 한다. 그 친구도 교통사고를 두 번 당하고 수술을 하고 병원에 세 번 실려 간 다음에야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된다고.
이거 다 끼워 맞추는 거라고 그는 스스로 말했다. 겨울연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을 20부까지 끼워 맞춘 거고 자기도 지금 끼워 맞추고 있는 거라고.
셋째 교훈이 이거였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살아 돌아오면 개판이 된다.
엡스타인 얘기를 하려고 가져온 거라고 그는 말했다. 수미상관을 맞춘 거라고.
죽기 전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되어서 지금 트럼프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앱스타인이 정말 죽었을까요, 하고 그는 물었다. 묘비명이 없다고. 누가 훼손할까 봐 그런 거라는데 이상하지 않냐고.
두 시간 사십 분짜리 방송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자기가 오늘 한 말이 조금 허황될 수도 있으니 너그럽게 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진심은 이거라고 말했다.
엡스타인 건은 계속 지켜보셔야 한다고. 이것 때문에 트럼프가 무너지고 미국 시장이 무너지면 한국 시장도 지금 같은 기세로 오르지 못할 수 있다고. 그때는 포트를 조절하셔야 하고 미련을 가지시면 안 된다고. 적어도 절반은 차익 실현을 하셔야 한다고.
그러고 이 말을 붙였다.
그때는 자기가 방송에 나오는 모든 사람 중에서 제일 먼저 말씀드릴 테니까, 자기가 도망가기 전까지는 좀 안심하셔도 된다고.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오늘 준비한 거라고 했다.
워터게이트와 모사드와 겨울연가를 두 시간 사십 분 동안 돌아서 도착한 자리가 거기였다.
트레이딩룸인데 트레이딩하는 걸 못 보여드렸다고, 다음 주에는 보여드리겠다고 그는 덧붙이고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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