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팀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분, 아시죠.
"이 노래가 왜 이 순위지?" 싶은데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낮고, 댓글창은 조용합니다. 그러면서 영상을 세 번째 돌려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저는 이 순간이 덕질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걸 나만 알고 있다는 기분이요.
리센느가 이 순간을 만들어 준 팀이었습니다. 2024년 3월에 데뷔했고, 'LOVE ATTACK'은 발매 당시 멜론에서 900위권이었습니다. 그 노래가 2년 뒤에 멜론 1위가 됐습니다. 노래가 먼저 뜬 게 아니라 리더 원이가 먼저 알려졌고, 그 뒤에 팀과 곡이 따라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리센느 정산 이야기와 원이 이야기에 적었습니다.
그 뒤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리센느." 연습생과 무명 시절을 견딘 팀이 이제는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아이돌과 청춘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난다"는 말이 됐다는 뜻입니다. 숨은 명곡과 실력 있는 무명 팀을 찾아 응원하는 문화이기도 하고, "당신도 누군가의 리센느입니다"라는 위로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저도 찾아봤습니다. 제가 고른 기준은 세 가지였습니다. 노래나 무대가 진짜로 좋을 것.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을 것. 지금도 활동하고 있을 것. 그 기준을 통과한 여섯 팀을 소개합니다.

영파씨 뮤직비디오는 한 편씩 보는 것보다 이어서 볼 때 재미있습니다. 맥앤치즈 아저씨, 햄버거 아저씨, 도넛 아저씨가 영상마다 나와서 이 팀의 비공식 6번째 멤버처럼 보이거든요. 게임 화면을 그대로 옮긴 연출, 자막을 망가뜨리는 장면, 스눕독이나 LL Cool J의 가사를 따온 것으로 보이는 레퍼런스까지 찾는 재미가 큽니다. 완전히 B급 코미디입니다.
그런데 저는 XXL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멤버들이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데, 그 사람들은 사실 다른 그룹의 무대를 찍으러 온 사람들이라는 설정입니다. 웃기던 영상이 마지막에 쓸쓸해집니다. 이 팀이 처한 상황을 웃음으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센느가 떠올랐습니다.
음악은 올드스쿨 힙합을 정면으로 합니다. 아이돌 랩 담당이 아니라 멤버가 직접 가사를 쓰는 래퍼들이고, 리더 선혜의 랩은 속사포입니다. FREESTYLE에서 비트가 갑자기 재즈로 바뀌는 순간이 있는데, 거기에 막내 지은의 낮은 목소리가 들어옵니다. 안무로 입덕하셔도 좋습니다. MACARONI CHEESE 안무 영상만 봐도 이 팀이 신인 중에 춤이 되는 팀이라는 게 보입니다.
이런 분이면 영파씨를 보세요. 웃기면서 진짜 실력이 있는 팀을 찾으신다면요.

2021년에 데뷔했으니 5세대 목록에는 없지만, 이 글에는 꼭 넣고 싶었습니다. 이 팀은 컴백할 때마다 장르가 달라집니다. 실험적인 곡으로 데뷔하고 R&B 크리스마스 노래를 내고 GingaMingaYo로 팝 록을 하다가 지금은 펑키한 곡을 합니다. 같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의 폭입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는 영화가 숨어 있습니다. GingaMingaYo에는 샤이닝의 타자기와 계단, 오징어 게임의 놀이터, 기묘한 이야기의 식당과 생일 케이크, 폴터가이스트의 TV가 들어 있습니다. 한 번 보고 지나가면 놓칩니다.
표정이 좋은 팀입니다. 무대에서 얼굴이 계속 바뀌어서 한 곡이 짧게 느껴집니다. WORK 퍼포먼스 영상은 특수 효과 없이 각도와 조명만으로 세련됨을 만들었고, 일곱 명이 머리 색으로 구분되어서 처음 보는 사람도 캐릭터가 잡힙니다. 수록곡도 거를 곡이 없고, 라이브 세션에서는 시티팝으로 편곡해 와서 음악에 진심이라는 게 보입니다.
이런 분이면 빌리를 보세요. 한 가지 색으로 정의되지 않는 팀을 좋아하신다면요.

서바이벌 'I-LAND2'를 거쳐 2024년 11월에 데뷔한 팀입니다. 이 팀의 댄스 프랙티스는 싱크가 칼 같습니다. 그런데 자컨에 들어가면 이렇게 정신없는 팀이 없습니다. 막내 세비가 이모티콘 표정 게임을 하고, 방장을 정할 때 "내가 반장이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칼군무를 보고 입덕해서 자컨에서 웃다가 정착하는 순서가 이 팀의 정석입니다.
노래도 좋습니다. SIGN은 2010년대 초반 감성의 짝사랑 노래라서 처음 들어도 낯설지 않고, In the Rain은 비 오는 날 혼자 듣기 좋은 시티팝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색소폰이 제가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수록곡이 더 좋다는 말이 어울리는 팀입니다.
이런 분이면 이즈나를 보세요. 칼군무와 예능감을 둘 다 원하신다면요.

힛지스는 곡을 못 내는 일이 없습니다. 데뷔곡 SOURPATCH, GROSS, CHARIZZMA, 어느 곡을 들어도 훅이 있고 귀에 남습니다. 컴백도 잦아서 이 팀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보입니다.
GROSS는 가사 한 줄이 인상적입니다. 'get that feet away from me'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고, 이 노래는 연애 감정을 귀엽게 표현한 곡입니다. 데뷔곡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이 파트를 시작하는 순서로 혜린, 서진, 서희, 이유, 비비를 외울 수 있어서 입문하기에도 편합니다.
이런 분이면 힛지스를 보세요. 곡마다 새로운 훅을 만나고 싶으시다면요.

IRL 안무는 관객을 등지고 시작해서 등지고 끝납니다. 저는 이게 이 팀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관계가 힘이라는 걸 곡의 처음과 끝에 두는 방식이요.
r u ok?에는 갑자기 스페인어 파트가 나오고, NERDY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오른쪽 눈에 오류가 뜨는 로봇 연출이 나옵니다. MV끼리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볼수록 재미있습니다. 멤버마다 개성이 달라서 영상이 나올 때마다 최애가 바뀝니다.
이런 분이면 이프아이를 보세요. 숨은 세계관과 안무를 같이 파는 분이라면요.

엑스인의 RRRUN 안무 영상은 카메라가 흔들립니다. 춤이 너무 세서 지진처럼 보이는 구간이 있습니다. 군무가 착시처럼 바뀌는 순간도 있고, 신인인데도 라이브로 무대를 하는 모습은 믿음이 갑니다. 공포 체험 자컨에서는 멤버들이 EMF 측정기를 직접 들고 오는 진지함이 있고요.
2023년에 데뷔한 5인조이고 2026년 10월에 첫 정규앨범이 나왔습니다. 이 팀은 지금 막 새 장을 열었습니다.
이런 분이면 엑스인을 보세요. 한 번 시작한 춤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팀이 좋으시다면요.
처음의 그 기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여섯 팀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영상을 한 번 보면 다음 영상이 보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1. 영파씨는 웃긴 B급 영상과 쓸쓸한 마지막 장면, 직접 쓰는 랩이 있는 팀입니다.
2. 빌리는 컴백마다 다른 팀이 되고, 이즈나는 칼군무와 혼돈이 같이 있습니다.
3. 힛지스는 나쁜 곡이 없고, 이프아이는 등을 돌린 채 시작하며, 엑스인은 카메라를 흔듭니다.
한 팀만 고르라면 위의 '이런 분이면' 문장에서 마음이 가장 크게 움직인 팀을 고르세요. 그 팀이 어느 날 리센느처럼 다시 불려 나올 때,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세대별 팀 지도는 5세대와 5.5세대 가이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