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37층 창밖으로 여의도가 펼쳐졌다.
여기서 하면 저도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그는 말했다.
처음 와 본 사람처럼 들뜬 목소리였다. 기관에서 오래 돈을 굴리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 조금 웃겼다.
마중 나온 매니저는 알상무님을 회사에서 보니까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반대로 이쪽이 그의 회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고.
내부가 진짜 좋다고 그는 감탄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붙였다. 이거 우리 돈 가져다가.
그런 게 아니죠, 하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주식운용 본부에 들어서자 그는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말 걸어도 되나, 하고 혼잣말을 하더니 팀장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말 걸면 안 될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두 번 말했다.
그래도 결국 말을 건다.
입사 1년 반 된 직원은 대리님 운용하는 걸 도우면서 리서치를 한다고 했다. 그는 슬쩍 물었다. 대리님 존경하세요?
엄청 좋아한다는 대답에 다들 웃었다.
그 대리는 표정이 너무 밝아서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고 그가 말하자, 그냥 그저 그렇다고 했다.
운용사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해 줄 말을 묻자 생각보다 더 힘들 거라는 답이 나왔다. 편해 보여도 스트레스가 많다고.
책상 위에 컵이 줄지어 있었다. 저거 다 커피냐고 그가 물었다. 저만큼 마셔야 버티는 거라고 그는 혼자 납득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자기도 펀드를 들어야 하니 하나만 알려 달라고 했다.
어차피 편집할 거라는 말이 나오고, 웃음으로 넘어갔다.
혼자 블룸버그를 보던 직원은 CPI 발표를 앞두고 금리 선물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CPI가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고,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해 달라고 그가 물었다.
조금 높게 나올 것 같다는 대답 끝에 그 직원의 눈이 옆으로 갔다.
왜 눈치를 보냐고 그가 짚었다. 선배죠? 선배잖아요.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본부장 자리에는 화면이 여섯 개 떠 있었다. 본부장인데 왜 저렇게 많이 띄우고 보시냐고, 누가 일을 못 해서 그런 거냐고 그는 물었다.
항상 감시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본부장에게 그는 요즘 그렇게 핫한 ETF의 미래를 물었다. 미래는 예상할 수 없지만 훨씬 더 창대해질 거라는 답이었다.
예상할 수 없다고 해 놓고 창대해진다고 했다. 여의도다운 대답이었다.
글로벌 운용 쪽에는 유난히 얼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냐고 묻자 일주일이라고 했다.
아, 그래서 모니터가 딸랑 두 개구나, 하고 그는 말했다. 기사 하나 읽고 있으라고 갖다 놓은 건 아니죠?
그런데 일주일 차 신입은 TDF가 뭐냐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은퇴 시기에 맞춰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하면서 변동성을 관리하는 펀드라고.
아, 전문가 같다고 그는 말했다. 목소리도 좋으시고.
사실 다 전문가시죠, 하고 매니저가 거들었다.
놀리러 간 자리에서 그는 칭찬으로 빠져나왔다. 얼어 있던 사람에게 그게 제일 필요한 말이었을 것이다.
크레딧 리서치 팀 앞에서 그는 조금 신이 났다.
채권 쪽이 자기 친정이라고 했다.
크레딧 리서치가 뭐냐는 질문에, 국채를 빼면 나머지는 다 크레딧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그는 자기 식으로 줄였다. 정확히 누가 망할지 좀 찾는 거.
누가 좋아질지 찾는 것도 한다는 대답이 정중하게 따라왔다.
그는 취업 준비생들이 운용사를 잘 모르고, 채권은 더 모를 거라고 걱정했다. 실장은 자기도 대학교 때 몰랐다고 했다. 정기예금보다 높은 이자를 주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금리가 오르면 채권이 위험한 것 아니냐는 걱정에는 만기 이야기가 나왔다. 짧은 만기의 채권에 투자하면 금리가 오를 때 오히려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채권 쪽에도 꼭 관심을 가져 달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국면에 따라 잘하면 훨씬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게 채권이라고.
요즘 어디가 좋으냐고 묻자, 기관이 잘 안 들어가는 B급 섹터에서는 부도가 조금씩 나고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나머지는 크게 문제없다고.
채권 본부장에게는 운용사와 증권사의 차이를 물었다. 증권사는 절대 수익을 좇고, 운용사는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을 보니까 조금 더 스테이블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주 헷갈리는 걸 그가 대신 짚었다. 증권사에서 펀드에 가입하니까 증권사가 운용한다고 생각하는데, 증권사는 판매만 하고 실제로 돈을 굴리는 건 운용사라고.
그러면 펀드 수익률이 안 좋을 때는 운용사로 전화해야 되는 거냐고 그가 물었다.
판매 보수가 있으니 판매사에서 대응하는 게 맞다는 답이었다. 그래도 가끔 전화가 온다고 그는 들었다고 했다.
운용사가 어떤 곳인지 매니저가 비유를 하나 꺼냈다.
축구팀 같다고. 매니저는 골을 넣는 공격수고, 리서치는 패스를 해 주는 사람이고, 감독도 있어야 한다고.
역시 현업은 다르다고 그는 웃었다. 은퇴하니까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다고.
그 말에 자기 이야기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 대신 그는 매니저라는 말을 풀었다. 매매보다는 돈을 맡아서 그 웰스를 매니지먼트하는 사람이라고.
농부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고객의 자금을 모아 계절을 보고 농사를 지은 다음 수확을 돌려주는 사람.
매니저는 운용 지시만 내리고, 그걸 받아 실제로 체결시키는 사람이 따로 있다. 트레이더다.
운용지원실 앞에서 그는 기관 물량이 여기서 나오는 거라고 설명했다. 오래 그쪽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의 말투였다.
복도에서는 점심을 먹으러 가던 사장과 마주쳤다. 운용사 들어오면 부자 될 수 있으니 많이 오라는 말을 남겼고, 직원들에게 불만은 거의 없는데 근태만 좀 잘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밥 먹는 것도 여의도에서는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누구랑 먹고 먹으면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
최근에 누구랑 먹었냐는 물음에 사장은 증권사 사람들과 많이 먹는다고 했다. 운용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라고. 주식 주문도 운용사가 직접 내는 게 아니라 증권사를 통해서 낸다고. ETF가 잘 거래되도록 물량을 대 주는 것도 증권사라고. 그러니 밥 한 끼도 협력이라는 것이다.
한강이 보이는 라운지에서 그는 잠깐 앉았다.
여기 앉아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여의도는 삭막하지만 이런 맛은 있다고.
이 일에 대한 그의 진심.
스트레스는 많이 받는다고. 힘들다고.
하지만 돈도 좀 많이 주고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운용을 하다 보면 알 수밖에 없다고.
그게 제 일이고 그게 제 투자가 되니까 너무 좋은 거라고.
여러분들은 몰래 차트 띄우고 화장실 가서 매매하잖아요. 우리는 그냥 합니다. 그게 우리 일이니까.
운용 업계가 커지고 있어서 주니어를 안 뽑는다 해도 실은 뽑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기회가 있으니 꼭 추천한다고.
그러고는 실제로 하는 사람들에게 딥하게 물어보러 갔다.
성장주와 반도체 쪽을 맡은 팀장은 주식 투자가 여전히 재밌냐는 질문에 재밌으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그는 짓궂게 다시 물었다. 열 살 어린 동생이 운용사에 취업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냐고.
당연히 삼성전자, 하이닉스 가야죠.
다들 웃었다. 마지막에 운용사 준비생에게 한마디를 청했을 때도 같은 말이 또 나왔다. 요새는 삼성이랑 하이닉스 가는 게 더 좋은 것 같다고.
방금 본심이었어!!!
채권 쪽 사람들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술을 좀 잘 드신다는 답이 나왔다. 그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친정 이야기라 그런지 맞장구가 빨랐다.
해외 쪽은 호가창에서 거래하니까 사람을 별로 안 만난다고 했다. MBTI를 물으니 INTJ가 진짜 많다고.
개인 투자로 하나만 추천해 달라는 말에는 QQQ가 나왔다. 그건 다 하는 거잖아요, 하고 그는 받았다.
그래도 진지한 대답들이 끝에 남았다. 자격증은 다들 갖고 있으니 그보다 자본 시장에 대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시장을 보고 그걸 아이디어로 만들어 보려는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조금 더 열심히 했을 때 내가 잘했구나 하고 뿌듯해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있었다.
개별 기업에 관심이 많으면 주식 쪽, 매크로에 능통하다 싶으면 채권 쪽이 재밌을 거라는 말도. 마음에 드는 지원자들은 대개 인턴 경험이 있더라는 말도.
그는 그 말들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근데 오고 싶네요. 회사도 깨끗하고.
저 와서 유튜브 해도 돼요? 여기서.
네, 오늘 펀드 수익률이 좋습니다.
질문과 대답이 하나도 안 맞았는데 이상하게 그게 허락처럼 들렸다.
안 되겠다. 자소서를 업데이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