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월 1일, 리버풀에서 온 무명 밴드가 런던의 데카 레코드에서 오디션을 봤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밴드의 매니저는 훗날 자서전에 그때 들은 말을 이렇게 적었다. 기타 밴드는 이제 한물갔습니다. 정작 그 말을 했다고 지목된 데카의 간부는 끝까지 부인했다. 누가 했든 그 말은 그 시절 업계의 상식이었다. 그 밴드의 이름은 비틀스였고, 매니저는 리버풀에서 집안의 레코드 가게를 맡고 있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이었다.
엡스타인에게는 매니저 경력이 없었다. 그가 가진 건 가게 진열대에서 익힌 감과, 지하 클럽에서 이 네 명을 처음 본 날의 확신 비슷한 것이 전부였다. 음반사가 거절하면 보통 거기서 끝난다. 회사라는 이름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엡스타인은 그 테이프를 들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회사가 보증해 주지 않는 밴드를, 아무것도 아닌 자기 이름으로 보증하고 다닌 것이다. 몇 달 뒤, 그 문 하나가 열렸다.
60여 년 뒤, 한 아이돌 숙소에서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리센느의 메이가 그만두기로 마음을 완전히 굳힌 날이었다. 부모님이 숙소까지 올라와 있었다. 대표가 붙잡고 이사가 붙잡았는데도 메이는 아니요, 안 돼요, 하고 답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원이가 들어갔다.
메이는 훗날 그때를 이렇게 설명했다. 잘하다가 너무 힘들어져서 자기한테 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잘하는 친구들도 언니들도 많은데 자존감은 계속 떨어지고, 채울 곳이 없었다고. 이 ‘채울 곳이 없었다’는 말이 핵심이다. 자존감이 바닥난 사람에게 우리가 보통 하는 말은 ‘너 잘해, 너 괜찮아’ 쪽이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못 믿는 상태에서는 그 말이 담기지 않는다. 붓는 족족 샌다. 대표와 이사가 실패한 것도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어린 연습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원이가 한 말은 결이 달랐다. 이 넷은 이미지가 비슷하니,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가 딱 한 명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메이는 말도 잘하니 너무 아까운 인재라고. 이건 칭찬이 아니다. 칭찬은 사람을 높이는 말이고, 이건 자리를 그려 주는 말이다. ‘너는 잘한다’가 아니라 ‘네가 빠지면 이 그림이 안 된다’였다. 자존감은 남이 채워 줄 수 없지만, 자리는 남이 정해 줄 수 있다. 새는 독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독을 어디에 둘지라도 정해 줘야 한다.
그런데 그날의 진짜 관문은 따로 있었다. 부모님이 딸에 대해 한참 묻다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네가 봐도 정말 괜찮은 회사냐. 딸의 재능은 딸 본인이 이미 부정하고 있었으니 부모에게 남은 확인은 회사뿐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자본금 1천만 원으로 시작해 아티스트가 한 팀뿐인 곳이었다. 대표가 직접 운전을 하고, 방송국마다 손편지를 돌리던 시절이다. 스무 살 연습생이 남의 부모 앞에서 네, 괜찮은 회사입니다, 라고 답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원이는 회사를 보증하지 않았다. 어머니, 저 한 번만 믿어 보세요. 질문은 회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답으로 자기를 내놓았다. 회사가 못 미더우면 나를 잡으시라는 뜻이다. 그 방에서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회사 사람이 하면 영업이 되고, 같이 연습하는 동료가 해야 비로소 약속이 된다. 데카가 거절한 밴드를 레코드 가게 주인이 들고 다닌 것처럼, 원이는 아무도 보증하지 않는 회사 앞에 자기 이름을 세웠다.
물론, 이 대목을 미담으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 원이는 그날을 이렇게 돌아봤다. 자기도 말하면서 무서웠다고.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느낌이었다고. 확신이 있어서 붙잡은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무렵 원이도 스무 살이었고, 팀은 뜨지 않았고, 자기 앞길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사람이 불안한 사람을 붙잡은 것이다. 만약 리센느가 끝내 안 됐다면 저 말은 미담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의 딸 몇 년을 붙잡아 둔 오지랖으로 남았을 것이다. 결과가 좋아서 좋은 이야기가 됐다는 사실을, 원이 본인이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웠다는 말이 그 증거다. 용기라는 단어는 확신이 있는 자리에서는 쓰지 않는다.
훗날 방송에서 짓궂은 가정이 나왔다. 그때 그만뒀는데 다른 멤버가 들어와 지금처럼 1위를 하는 걸 지켜봤다면 어땠겠느냐는 것이다. 메이는 일단 장이 진짜 꼬였을 것 같다고 했다. 원이의 답은 또 달랐다. 그렇게 됐다면 그 자리는 원래 자기 자리가 아니었던 거라고. 그리고 메이가 없었으면 1등을 못 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붙잡은 쪽이 공을 가져가지 않는다.
엡스타인이 들고 다닌 테이프는 결국 세상을 바꿨지만, 1962년 1월의 그는 그걸 몰랐다. 원이도 그날 그 방에서 아무것도 몰랐다. 대개 사람은 확신이 서면 그때 말하겠다고 미루고, 확신은 끝까지 서지 않는다. 원이가 달랐던 점은 확신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확신 없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지키려고 그 뒤로 2년을 썼다. 보통은 준비가 끝나면 약속을 한다. 이 사람은 약속을 먼저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메이는 남았고, 팀은 1위를 했다. 다만 그건 나중 일이다. 그날 그 방에는 아무 보장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