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6일, 리우 올림픽 육상 여자 5000미터 예선이 열렸다. 레이스 도중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과 미국의 애비 다고스티노가 뒤엉켜 트랙에 쓰러졌다. 메달은커녕 결승 진출도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일으켜 세웠다. 다고스티노는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둘은 끝까지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주최 측은 두 사람 모두 결승에 나갈 수 있게 했다. 다고스티노는 부상으로 뛰지 못했고, 햄블린은 결승에서 꼴찌를 했다. 두 사람은 국제페어플레이위원회가 주는 페어플레이상을 받았다.
5000미터는 남보다 앞서야 이기는 종목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그날 두 사람이 한 일은 계산이 맞지 않는다. 쓰러진 경쟁자를 일으켜 세우는 데 쓴 몇 초는 그대로 손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대회에서 지금까지 기억하는 장면은 금메달리스트의 결승선이 아니라, 꼴찌 둘이 서로를 부축하던 모습이다. 앞서가는 것과 나란히 가는 것은 다른 경기였던 셈이다.
리센느의 메이가 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갈림길을 지났다.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나는 게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이었다. 메이는 잠깐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지금 친구들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저는 다른 뭔가 자기 개발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 시간 아깝지 않게, 친구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큼 저도 뒤처지지 않게 뭔가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몇 초짜리 답이다. 그런데 그 안에 눈에 띄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앞서간다’가 아니라 ‘뒤처지지 않게’다. 두 표현은 비슷해 보여도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 ‘앞서간다’는 내가 이미 남들보다 낫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뒤처지지 않게’는 남들도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한 다음에 나온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아래에 두지 않고 옆에 세운 것이다. 나는 아이돌을 하고 너는 공부를 한다, 둘 다 같은 무게로 힘든 일이다. 그 전제가 한 단어에 들어 있다.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정해져 있다. ‘아쉽지만 저는 꿈을 좇고 있으니까요.’ 듣기엔 무난하다. 하지만 그 문장 안에서 친구들은 꿈이 없는 사람이 된다. 자기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을 조금 낮추는 것이고, 대부분은 그걸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메이는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열몇 살짜리가 카메라 앞에서 몇 초 만에 고른 단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런 말은 그 자리에서 지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그렇게 나온다.
그 영상 아래에는 어른도 자기 일만 힘든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라는 말이 달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다는 말도 여러 번 되풀이됐다. 사람들이 반응한 건 말솜씨가 아니라 그 말이 서 있는 자리였다. 경쟁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메이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만 그 경주에서 친구들을 추월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달리는 사람으로 놓았다. 햄블린과 다고스티노도 경주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끝까지 달렸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 둘이 달렸다.
메이는 원래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목소리에 힘을 크게 주지 않는데도 하고 싶은 말은 다 전한다. 문장을 끝까지 끌고 가고, 접속사를 골라 쓰고, 요점을 흐리지 않는다. 말이 많은 편인데도 듣는 사람이 지치지 않는다는 평이 자주 보인다. 생각이 말보다 한 발 앞서 있어야 가능한 방식이다. 그런 사람이 고른 단어이기에 ‘뒤처지지 않게’는 실수로 나온 겸손이 아니라 정확히 고른 표현으로 읽힌다.
물론, 한 사람의 화법을 몇 초짜리 인터뷰로 단정하는 건 무리다. 카메라 앞의 말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영상 아래 유독 많이 달린 말들을 보면 짐작 가는 데가 있다. 부모님이 부럽다, 이렇게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 한 사람의 화법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존중받아 본 사람이 남을 존중하는 법을 안다. 친구들을 옆에 세우는 말버릇은, 아마 누군가 그녀를 먼저 옆에 세워 줬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무명에서 시작한 팀일수록 팬들이 붙잡는 것은 무대만이 아니다. 저 애들은 마음이 바르구나, 하는 확인이 쌓여야 오래 본다. 메이가 인터뷰마다 남긴 문장들이 그 확인을 대신 해 왔다.
리우의 그 레이스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햄블린은 결승에서 꼴찌를 했지만, 그날 트랙 위의 장면은 남았다. 앞서가는 건 기록에 남고, 나란히 가는 건 사람들 기억에 남는다. 뒤처지지 않게, 라는 말이 생각보다 멀리 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