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꼭 들어 보고 싶었다. 들으면 이성을 잃고 바다에 뛰어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녀 키르케의 조언대로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았고, 자신은 돛대에 묶게 했다. 그리고 명령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뱃머리를 돌리지 말라고. 내가 풀려나려고 해도 두라고.
노래가 들리자 그는 정말로 미쳐 날뛰었다. 풀려나 사이렌에게 가려고 온 힘을 다했다. 부하들은 약속대로 풀어 주지 않았다. 이 일화는 지금도 ‘오디세우스의 약속(Ulysses pact)’이라는 이름으로 쓰인다. 미래의 내가 흔들릴 것을 알고, 흔들리기 전에 나를 묶어 두는 결정이라는 뜻이다.


월요일 아침 개장 전 프리장을 떠올려 보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5~7%씩 밀리고 있었다. 방송 화면 밖에서는 손절하겠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그날 아침의 사이렌은 노래가 아니라 호가창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로 클릭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이성을 잃은 상태의 나에게 매도 버튼을 맡겨도 되는가. 팔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파는 것이 맞는 사람도 있다. 다만 파는 결정을 그 순간의 내가 내리게 두지 말라는 것이다. 시초가에 몰아서 팔면 가장 겁이 날 때의 가격으로 전부 정산한다. 그때 가격이 가장 나쁘다는 보장은 없지만, 가장 감정적이라는 보장은 있다.
그래서 묶는다. 첫 번째 밧줄은 쪼개는 것이다. 팔기로 했다면 물량을 세 덩이로 나눈다. 아침에 한 덩이, 나머지는 오후로 넘긴다. 오후에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아침에 이미 한 덩이를 팔았으니 시장이 어디로 가든 나는 한 번은 맞게 움직인 셈이다. 두 번째 밧줄은 상한선이다. 속이 끓는다면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정리한다. 팔자마자 반등하면 아깝지만, 그만큼만 덜 번 것이다. 반등이 오면 그때 그만큼 다시 사면 된다. 세 번째 밧줄은 시계다. 사려는 사람은 아침을 피한다. 아침은 가격이 가장 시끄러운 시간이다.
물론 반론이 있다. 가장 좋은 매도는 오를 때 한 번에 파는 것 아닌가. 맞다. 상승장에서 한 번에 파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하지만 지금 묻는 것은 깔끔한 매도가 아니라 떨어지는 장에서 상처를 남기지 않는 매도다. 한 번에 팔고 반등을 맞으면 후회는 두 배가 된다. 팔 때의 두려움이 한 번, 팔고 나서 오른 것에 대한 분함이 한 번. 그 후회가 다음 매매를 망친다. 손실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훨씬 아프게 느껴진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오래된 발견이다. 아픈 사람은 서둘러 낫고 싶어 한다. 서두름이 가격을 만든다.
여기서 이런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쪼개서 팔면 결국 평균을 맞추는 것뿐이고, 손에 쥔 것이 바뀌는 것은 없지 않느냐고. 옳은 지적이다. 쪼개기는 가격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다. 다음 주에도 시장에 앉아 있을 사람이 되는 기술이다. 그날 방송에서도 이 차이가 가장 선명했다. 오늘의 일은 얼마까지 빠지는지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장이 끝난 뒤에도 투자를 포기하지 않을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적정 가격을 따지는 논쟁은 이런 날에는 소용이 없다는 말도 함께였다.
그래서 이 글의 요점은 단순하다. 판단은 평온할 때 하고, 폭락장에서는 실행만 한다. 규칙은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해야 한다. 세 덩이, 일부만, 아침은 피하기. 오디세우스의 밧줄도 매듭이 복잡했을 리 없다. 복잡한 규칙은 흔들릴 때 풀린다.
돛대로 돌아가 보자. 오디세우스가 현명했던 것은 사이렌을 이기는 법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질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밧줄을 미리 맬 수 있다. 다음에 호가창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그 노래를 듣는 나를 이미 묶어 놓았는지부터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알상무 방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리했습니다. 원본 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주제를 쉽게 풀어 쓴 글은 폭락장 분할 매도, 폭우 속 고속도로 운전에 빗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