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알상무님의 「지표추적자 1012」 방송(2026년 10월 12일)에서 나온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알상무님의 칼럼 문체를 빌려 다시 쓴 글입니다.
이솝 우화에 양치기 소년이 있다. 심심했던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고, 마을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언덕을 뛰어올랐다. 늑대는 없었다. 소년은 웃었다. 같은 장난이 몇 번 반복됐다. 그리고 어느 날 진짜 늑대가 왔다. 소년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스어 판본의 교훈은 짧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벌은, 참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전한다. 거짓말로 얻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참말을 해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지난주 삼성전자는 참말을 했다.
사상 최고의 분기 실적이었다. 4분기 전망은 그보다 높다. 그런데 오늘 주가는 25만원대로 내려왔다. 장중에는 24만원도 찍었다. 두 달 전 급락한 뒤 간신히 기어올랐던 그 자리다. SK하이닉스는 160만원대에 겨우 걸쳤다. 코스피는 4% 가까이 빠졌고, 그동안 '채널'이라고 우기며 버티던 추세선은 완전히 깨졌다. 외국인은 하루에 2조 5천억을 팔았다. 개인은 2조를 샀다.

숫자가 나빴을까? 아니다. 숫자는 좋았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시장이 그 숫자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숫자를 말하는 쪽을.
그 불신에는 이력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 상당수는 한국 기업이 이런저런 핑계로 주주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삼성전자를 '사용자'라며 소송을 냈다는 뉴스도 있었다. 외국인 눈에는 이상하다. 회사가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차이다. 우리가 중국 기업을 보며 왜 저게 당의 회사냐고 불편해하듯, 그들은 한국 기업을 보며 저 회사의 주인은 누구냐고 묻는다. 늑대 소리는 한 번에 쌓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의 참말로 지워지지도 않는다.
물론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는 쪽은 바다 건너에 있다.
AI 회사들은 공장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올린다. 지금 만들기만 하면 미래 매출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돈은 회계상 바로 비용으로 잡지 않는다. 자산으로 올려 두고 몇 해에 걸쳐 감가상각한다. 당장 덜 보일 뿐, 쓴 돈은 쓴 돈이다.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그렇게 잘 안다면 2~3년 전에는 왜 못 했나. 우리는 정치인의 비전은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가의 비전은 왜 다 같이 믿는 걸까. 오라클에게도 같은 질문이 간다. 엄청난 돈을 빌려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데, 허가가 안 나면 어떻게 할 건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상장은 영어로 Initial Public Offering, 공개적으로 남의 돈을 받는 일이다. 가족끼리 하는 회사라면 망해도 가족끼리 망하면 된다. 하지만 시장의 돈을 가져간 순간 약속이 생긴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버는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말하겠다는 약속. 그래서 감사를 받고, 그래서 숏 보고서를 쓰는 감시자를 미워하면 안 된다. 그들이 있어야 딴짓을 못 한다. 남의 돈을 태우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피 한 방울로 모든 걸 검사하겠다던 테라노스가 그랬다.
그렇다. 같은 실적이라도 믿을 수 있는 회사는 더 높은 값을 받는다. 실적은 숫자로 증명한다. 신뢰는 시간으로만 증명된다. 오늘 한국 시장이 유독 많이 빠진 이유를 다른 데서 찾기는 어렵다. 아시아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기업들이 있는데 주가가 빠진다면, 남는 답은 그 기업들이 한국에 있다는 것뿐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쯤 되면 다 팔고 떠나야 하느냐는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짜증이 나서 파는 것과 조급해서 몰아 사는 것은 같은 실수의 앞뒷면이다. 지난봄 뒤처질까 봐 주식을 밀어 넣은 사람들이 그랬고, 지금 화가 나서 던지는 사람들이 그 반대편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좌절했을 때 현금의 일부로 지수를 조금 사 보는 것, 그리고 오를 때 조금씩 덜어 현금을 불리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화에서 늑대는 결국 왔고, 아무도 언덕을 오르지 않았다. 소년이 다시 믿음을 얻는 방법은 더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지루할 만큼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데이터센터를 짓는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을 사람인 우리에게는 다른 숙제가 있다. 외침이 들릴 때마다 우르르 뛰어오르지도, 귀를 막아버리지도 않는 것. 천천히 언덕을 올라가 직접 보는 것이다.
같은 방송을 숫자와 표로 정리한 글은 사상 최고 실적에도 삼성전자가 빠진 이유는 '신뢰'다에, 가볍게 읽는 버전은 스펙은 역대급, 평점은 글쎄요에 있습니다.
원본 영상: 알상무 「지표추적자 1012」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