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알상무님의 「지표추적자 (1015 목)」 방송(2026년 10월 15일)에서 나온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알상무님의 칼럼 문체를 빌려 다시 쓴 글입니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 다우존스 산업평균은 2,246.74로 시작해 1,738.74로 끝났다. 하루에 508포인트, 22.6%가 사라졌다. 지금까지도 하루 하락률로는 역대 최대다. 증권사들에 쏟아진 추가 증거금 요구는 평소의 열 배에 달했고, 열한 곳은 고객 한 명의 증거금 요구만으로도 자기자본을 넘어섰다.
다음 날 아침,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단 한 문장짜리 성명을 냈다. 연준이 중앙은행으로서의 책임에 따라,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떠받칠 유동성의 공급원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연준은 그날 170억 달러를 풀었다. 성명은 일부러 짧았다고 한다.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날 시장에 필요했던 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한 판결도 아니었다. 돈이 마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문장 하나였다.
우리는 어제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코스피는 5,554.22로 끝났다. 어제보다 약 7.5% 빠졌고, 종가 기준으로는 올해 가장 낮은 자리다. 외국인은 오늘 3조 7천억 원을 팔았고, 누적으로는 218조 원을 팔았다. 알상무님은 방송의 첫머리에서 이 숫자들보다 먼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억울하다는 말이었다.
‘억울하다’는 감정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돈을 굴려 본 사람만큼 차가운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돈을 벌러 들어가서 하락한 것이고, 오를 때는 반대편에 선 사람도 억울해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투력으로는 이미 20점이 깎인 것이라고 했다. 포지션을 다 접은 게 아니라면 해야 할 생각은 하나, 내일 어떻게 할 것인가다.
왜 억울함이 값을 치르게 하는가. 억울함은 책임 소재를 묻기 때문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외국인은 왜 파는가.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물론 이 질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판결을 향한다. 시장이 묻는 것은 판결이 아니라 가격이다.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가격은 먼저 움직인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 보자. 억울한가가 아니라, 왜 파는가. 알상무님은 외국인에게도 이 질문을 돌려놓았다. 그들은 우리보다 정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쪽이고, 그런 쪽이 1년 가까이 팔고 있다면 팔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팔지?’ 하며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넘기다가 한꺼번에 누적되어 맞는다.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는 경기가 아니라 유동성이라고 했다. 경기 지표는 오히려 좋다. 문제는 하이퍼스케일러가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동안은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것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돈이 모자라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가장 안 좋아 보이는 것부터 던진다. 그는 부루마블에 빗댔다. 돈이 없으면 가장 별로인 호텔과 땅부터 넘기지, 알토란 같은 뉴욕은 끝까지 쥐고 있다. 한국은 그 판에서 뉴욕이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왜 파는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건 너무 차가운 시각 아닌가. 한국은 제조업이 강하고 실적도 좋다. 맞는 말이다. 알상무님도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외국인이 보는 한국은 제조업은 잘하지만 AI 모델이 없고, 지분이 적은 오너가 회사의 자원을 쥐고 있는 곳이라는 점도 있다. 이 점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선을 그었다. 돈을 넣기 전에 한 번 더 따져 볼 만한 조건이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에게 대응은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반응하는 일이다. 운동선수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듯이, 내일 아침 올라 있을 때와 내려 있을 때 무엇을 할지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오늘 미국장이 반등하는 것을 보며 위안을 삼는 일은 소용없다. 그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내일 아침 일어났더니 3% 빠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이 없다면 억울해할 자격도 없다.
1987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날 월스트리트에서 끝까지 억울해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그들의 억울함을 기다리지 않았다. 필요했던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었고, 그 문장은 판결이 아니라 준비였다. 우리의 문장은 우리가 써야 한다. 억울하다는 말은 오늘로 접고, 내일 아침의 문장 하나를 먼저 정하시길 바란다.
같은 방송을 숫자와 표로 정리한 글은 코스피 5,554로 끝난 목요일, 알상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이너스 20점"이라고 한 이유 (지표추적자 1015)에, 가볍게 읽는 버전은 부루마블에서 돈이 없으면 무엇부터 파나: 코스피 5,554의 하루에 있습니다.
원본 영상: 알상무 「지표추적자 (1015 목)」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