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넬대학교 구내식당에서 누군가 장난삼아 접시를 공중에 던졌다. 한 젊은 물리학자가 그 접시를 봤다. 접시는 돌면서 흔들렸고, 가장자리에 박힌 빨간 학교 문장이 도는 속도와 흔들리는 속도가 달라 보였다. 할 일이 없던 그는 그 움직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자기가 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그 흔들리는 접시를 갖고 놀던 데서 나왔다고 회고했다.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하나 더 있다. 훗날 물리학자들이 그 회고를 따져 봤더니, 파인만이 기억한 계산은 거꾸로였다. 접시가 흔들림보다 두 배 빨리 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흔들림이 두 배 빨랐다. 노벨상 수상자가 장난 같은 문제에서 계산을 뒤집어 기억한 셈이다. 그런데 이건 흠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이다.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었다. 다들 웃고 넘긴 장면을 혼자 진지하게 붙잡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도 웃자고 던진 접시를 붙잡는 사람이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다. 한 래퍼가 쓴 가사가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미안하지만 네가 혼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생각 조금은 하지 않을까.’ 꼴값 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 예능에서 누군가 웃자고 물었다. 이걸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궤도는 웃지 않았다. 이거 한번 풀어 볼까요.
그가 꺼낸 건 수학자 이야기였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사백 년 만에 풀리자 수학자들은 기뻐하기보다 허전해했다고 한다. 즐겁게 풀던 문제를 뺏겼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풀기 힘든 난제 일곱 개를 따로 골라 두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가사를 다시 짚었다. 이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난제의 목소리라고. 내가 리만 가설인데, 수학자들아 너희가 나를 못 풀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생각을 계속하지 않겠느냐.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작사가 본인이 말했다. 자기가 생각한 사랑은 풀지 못하는 숙제였다고. 아무도 읽지 않던 문장을 진짜로 읽은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그는 김치 싸대기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김치로 뺨을 때리는 장면을 보면 다들 맞은 사람만 애처롭게 본다. 그런데 작용과 반작용에 따르면 김치도 볼에 맞았다. 그러니 김치도 애처롭게 봐야 한다고.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이 사람의 세계관이 다 들어 있다. 그가 보는 세상에는 편들어 주지 않아도 되는 쪽이 없다. 김치에게도 사정이 있다.

귀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구는 시속 1,300킬로미터로 자전한다. 그러니 한 병원에 붙박인 지박령이라면 제자리를 지키는 데 엄청난 힘을 써야 하고, 사람을 해칠 힘은 남지 않는다. 그러면 귀신을 만나도 무서울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본인의 몸을 고정하셨습니까, 라는 그의 말은 밈이 됐다. 그런데 그 밑에 이런 고백이 달렸다. 원래 가위에 잘 눌리고 귀신을 엄청 무서워했는데, 저 설명을 듣고 무서운 게 팍 식어서 그 뒤로 가위에 한 번도 안 눌렸다고. 가위가 무서운 건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설명이 붙는 순간 그건 그냥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된다. 웃자고 던진 질문 하나가 누군가의 오랜 무서움을 걷어 간 셈이다.

물론, 모든 농담을 진지하게 받는 사람은 피곤하다. 회식 자리에서 그러면 다음부터 초대받지 못한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궤도의 진지함은 분위기를 깨는 쪽이 아니라 판을 넓히는 쪽이다. 그가 답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다시 웃는다. 놀림받던 가사가 사랑에 관한 시가 되고, 귀신 이야기가 자전 이야기가 된다. 파인만의 접시가 식당 장난에서 노벨상으로 간 것처럼, 질문의 무게는 던진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정한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계기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연구원 시절, 통제 불능이 된 러시아 화성 탐사선이 지구로 떨어지던 때 추락 궤도 계산을 도왔다고 한다. 그 물체는 추락 30분 전 제주도 상공을 지나갔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학자와 대중 사이에 아무도 서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에 서기로 한 게 그때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 뒤로 십수 년, 400석짜리 강연장에 관객 두 명이 앉아 있던 날도 있었다. 요즘 물 들어와서 노 젓는 것 같다는 말에 그는 답했다. 자기는 물이 없을 때도 계속 젓고 있었다고. 젓는 게 중요하지, 앞으로 나가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그가 자주 꺼내는 사진이 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 킬로미터 밖에서 찍은 지구, 창백한 푸른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은하의 깡촌에 사는 태양계 촌놈들이라고. 우리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하찮은 게 아니라,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과학 이야기로 시작해 서로에게 무례하지 말자는 데서 끝난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그렇게 끝난다.

파인만의 접시는 누군가의 장난이었다. 그걸 장난으로 받았으면 그냥 날아간 접시 하나로 끝났을 것이다. 궤도도 마찬가지다. 그 질문들을 농담으로 받았으면 웃긴 장면 몇 개로 끝났을 것이다. 웃어야 할 자리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대개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질문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