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잘되는 가게가 있다. 매달 장부는 흑자다. 단골도 줄을 선다. 그런데 어느 날 거래처 열 곳이 한꺼번에 전화를 건다. 빌려준 돈을 이번 주 안에 갚으라는 것이다. 장부에는 이익이 쌓여 있지만 통장에는 현금이 없다. 이 가게는 적자여서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갚을 현금이 없어서 문을 닫는다.
1997년의 한국이 이 가게와 닮아 있었다. 정부 재정은 건전한 편이었고, 정부가 빚을 못 갚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었다. 모자랐던 것은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온 외화였다.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 이후 협상이 이어져 12월에 합의가 나왔고, IMF 약 210억 달러에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등의 자금을 더해 약 580억 달러 규모의 지원 패키지가 짜였다.
흔히 이 사건을 국가 부도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정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적은 없다. 물론 약점은 있었다. 경상수지는 몇 해째 적자였고, 대기업은 은행 빚으로 몸집을 키운 상태였다. 그래도 위기의 방아쇠가 된 것은 돈 전체의 부족이 아니라 갚아야 할 외화, 그중에서도 달러의 부족이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외화 유동성 위기다.
균열은 그해 1월 한보철강 부도에서 시작됐다. 은행 빚으로 덩치를 키운 대기업이 쓰러진 첫 신호였다. 7월에는 태국이 바트화 방어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넘어갔고, 동남아 통화가 연달아 무너졌다. 같은 달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대상이 됐다. 해외 투자자들은 아시아 신흥국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고, 한국도 그 목록에 들어 있었다.

핵심은 빚의 구조였다. 1990년대 한국의 종합금융회사(종금사)와 은행들은 해외에서 달러를 짧게 빌려 왔다. 만기가 1주일, 한 달짜리인 돈도 많았다. 이 달러는 국내 기업에 더 높은 금리로 다시 빌려주거나 장기 투자에 묶였다.
짧게 빌려 길게 묶는 방식은 평소에는 이자 차익을 남긴다. 그러나 해외 채권자가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순간 구조가 뒤집힌다. 빌려 간 기업이 못 갚고, 종금사가 못 갚고, 한국 전체가 갚을 달러를 마련하지 못한다. 수출로 번 달러보다 만기가 돌아오는 달러가 더 많았다.
IMF는 달러를 빌려주면서 조건을 걸었다. 방향은 네 갈래였다.
통화 긴축: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금리를 크게 올렸다. 연말 단기 금리는 연 20%를 훌쩍 넘었다.
금융 구조조정: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은행과 종금사를 통폐합했다.
기업 개혁: 부채비율을 줄이고 계열사 간 상호 지급보증을 풀게 했다.
시장 개방: 외국인의 주식·채권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풀었고, 12월 16일에는 환율이 시장에서 정해지는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뀌었다.
한 해 전 8백 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연말 2천 원에 가까워졌다. 달러 빚을 진 기업은 같은 빚이 두 배 넘게 불어난 셈이다. 해를 넘겨 1998년 1월에는 국민이 장롱 속 금붙이를 내놓는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고, 약 227톤이 모였다. 약 20억 달러 남짓이었다. 구제금융 규모와 견주면 작은 숫자였지만, 외부에는 한국이 스스로 일어서려 한다는 신호로 읽혔다.
외환위기가 남긴 가장 큰 변화는 숫자 바깥에 있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대량 실업이 생겼고,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간다는 평생직장의 약속이 깨졌다. 1999년 영화 「해피엔드」가 그린 것이 이 시기의 가장이다. 은행에서 일하다 실직해 집에 머무는 남편과, 일하러 나가는 아내라는 구도였다.
기업 쪽 규칙도 달라졌다. 은행은 대출을 만기까지 가져가는 돈이 아니라 시가로 평가해야 하는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고, 기업은 부채비율을 따지는 대상이 됐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가 이 변화 속에서 나왔다.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주가가 외국인 매매에 흔들리는 시장이 됐다.
이 위기는 한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1998년 8월 러시아가 국채 상환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러시아 채권을 많이 들고 있던 미국 헤지펀드 LTCM이 큰 손실을 입었고, 레버리지가 컸던 이 펀드의 포지션 때문에 시장 전체가 흔들렸다. 같은 해 9월 뉴욕 연방준비은행 주선으로 월가 14개 금융기관이 약 36억 달러를 모아 LTCM의 포지션을 인수했다. 정보와 돈이 지금처럼 빠르지 않던 시절에도 한 나라의 유동성 위기는 몇 달 만에 지구 반대편까지 번졌다.
1997년의 교훈은 한 줄로 줄어든다. 망하는 것은 이익이 없을 때가 아니라, 갚아야 할 날에 현금이 없을 때다. 한국은 장사가 돌아가는 가게였다. 다만 외상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온 날 통장에 달러가 없었다. 그 가게가 문을 닫았는지, 구조조정 끝에 다시 열었는지는 그 뒤 한국의 이야기다. 처음의 가게로 돌아가 보면, 위기를 버틴 가게들의 공통점은 늘 같았다. 월말 결제일 전에 통장을 먼저 채워 둔 곳이었다.
알상무 방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리했습니다.